[국내뉴스]
[인터뷰] 칸 영화제 가는 배우 유지태
2004-05-06

<올드 보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동시출품 행운누려

올해 칸영화제는 유지태(28)라는 젊은 한국 배우를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칸영화제에 참가하는 언론은 대략 70여 개국 4천여 매체. 유지태는 <올드 보이>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 한국이 출품한 두 편의 경쟁작 모두에 출연해 세계 영화인과 영화팬들을 만난다. 한 배우가 두 편의 영화로 칸영화제를 찾은 것은 영화제 역사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드문 일. 올해는 유지태를 비롯해 장만위(張曼玉)까지 이례적으로 두 명의 배우가 작품 두 편을 경쟁작 목록에 올려놨다.

3일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지태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덤덤할 뿐"이라고 대답했다. 의례적 겸손함은 아닌 듯. 그는 "상이나 영화제 초청보다는 열심히 영화작업하는 것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칸영화제가 왜 대단한지 설득시키려 하는데 아직 설득에 넘어간 적은 없어요. 그것은 달나라 여행과 같아요. 처음에는 소란스럽지만 나중에는 가는지 안 가는지에 관심조차 없어지는…. 영화제(출품이나 수상)도 우리 나라에서 그런 식이 될 때가 있겠죠."

그는 나이가 들수록 상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 최근 한 연극 출연에서도 그것을 절실히 느꼈단다.

두 편의 출품작 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5일 관객에게 선보이기 시작했다. 두 남자가 옛 연인 선화를 만나러 가는 이틀간을 그린 이 영화는 스타급 배우 유지태와 작가 홍상수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유지태 개인적으로는 캐릭터를 위해 20㎏이나 몸을 불려 출연한 사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극중 유지태가 맡은 역은 대학 강사 '문호'.

그는 "한국 영화계에서의 독특한 위치나 전작들을 보면서 생긴 호기심에서 영화 출연을 결심했다"며 배역에 대해서는 "치졸함과 순수함 등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들이 표현됐고 그런 점 덕분에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촬영중 불어났던 몸은 두 달여 만에 바로 원상복구됐다고. 유지태는 자신의 비대한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울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어머니가 영화를 보시다가 우셨대요. 다시는 벗는 장면은 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베드신에서 보인 처진 뱃살이 가슴 아프셨나 봐요. <올드 보이> 때도 그러셨어요. '올백'으로 헤어 스타일을 바꾸려고 약을 바르고 잤더니 아침에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더군요. 그땐 머리카락을 주우시면서 우셨죠."

그는 자신을 '붉은 돼지'로 표현하면서 어머니와 에피소드를 하나 더 들려줬다.

"제가 술 마시면 온 몸이 빨개지거든요. 어느날 술 먹고 집에 들어가서 웃옷을 벗고 자다가 나왔는데 마침 식사중이시던 어머니가 숟가락을 놓으시더군요. 그때 제 모습이 완전히 '붉은 돼지' 같았던 거예요. '돈 안 벌어다 줘도 괜찮으니 살 좀 빼라'시더군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촬영이 끝난 후 이달 초까지 유지태는 연극 <해일>의 연습에 시간을 쏟았다. 아침 9시 연습실에 출근, 하루 내내 연습이 하루 일과. 덕분에 그는 영화 데뷔 후 처음 출연한 연극에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따라서 칸영화제 참석은 그동안 쉴 새가 없었던 그에게 좋은 휴식 기회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칸의 계획을 묻자 "사실, 마음이 편하지 않다"며 향후의 바쁜 일정을 늘어놓았다.

<올드보이>

"칸에 가서 술도 마시고 해변도 걷겠지만 사실 마음이 편치는 않아요. 귀국해서 3일 있으면 차기작 <남극일기>가 촬영에 들어가고 연출하려는 단편영화도 있거든요. 너무 바쁘지 않느냐고요? 젊은데 바쁘게 지내야죠…."

결혼하면 지금보다 일을 덜하게 될 것이라는 유지태는 "하늘을 봐야 별을 따죠"라고 말하면서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미고 싶다는 소망을 감추지 않았다. 결혼은 그가 꾸는 가장 큰 꿈 중이다.

"쭉 어머니와 둘만 살았거든요. 명절 때 어머니와 외식을 하면 우리 테이블만 유난히 썰렁하더군요. 와이프와 아이까지 꽉 찬 4인용 식탁에서 행복하게 밥 먹고 얘기하고 싶은 게 꿈입니다. 물론 사람 찾기가 쉽지는 않지만요."

다음은 유지태와의 일문일답

-20㎏이 쪘다가 원상태로 복구됐다. 살 빼는 게 어렵지 않았나.

=빼는 것보다 찌는 게 어렵다. 사람이 늘어지니 활력이 없어지고 생활리듬도 깨지고. 살찌고 빼는 것은 배우로서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 듯하다. 기자들도 급하면 밤새 기사를 쓰지 않나. 일이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주인공 문호는 과거의 여자 선화를 만나러 떠난다. 연애에 있어서 과거를 돌아보는 스타일인가.

=나 같으면 선화를 만나러 안 갈 것이다. 과거는 과거로 남겨두지 돌아 볼 필요가 있을까 싶다. 굳이 만나려 하지 않아도 만날 사람은 또 만나지 않을까.

-<영화 속 팔자(八字) 걸음걸이는 의도한 것인가.

=예전에 무용을 해서 팔자가 몸에 익숙한 데다 살이 찌니 자연스럽게 그런 걸음걸이가 묻어나더라. 이번 영화에서는 일부러 하려고 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능력있는 감독들과 작업한 경험이 많아 연출에서도 많이 배울 수 있겠다.

=소소하게 체득한 것들이 많다. 가장 확실한 것은 영화를 잘 만드는 좋은 감독들은 자신의 영화에 대한 확신이 뛰어난 감독이라는 것이다.

-<올드 보이>의 박찬욱 감독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홍상수 감독은 일하는 스타일이 극과 극인 듯싶다.

=박 감독은 명석하고 확실한 편이다. 계산도 철저하다. 디테일을 잘 지적해주고 굽힘이 없는 편이다. 반면 홍상수 감독은 시나리오가 아침에 나올 정도로 현장성이 강하다. 홍 감독의 영화를 극사실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머릿속에 상상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을 뿐이다.

-계획중인 단편영화에 대해 설명해 달라.

=다섯 감독이 다섯 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하는 HD 프로젝트였지만 계획이 무산되면서 내 돈을 들여 제작할 예정이다. CG도 들어가는 디지털 팬터지 영화였는데 예산이 줄어드는 바람에 다른 식으로 풀어내야 한다. 네 번째 연출하는 단편영화다.

-<남극일기>에서 맡은 역은 어떤 캐릭터인가.

=막내로 탐험대에서 남극을 처음 접하는 '초짜' 대원으로 출연한다. 2박 3일간 배우들이 합숙하며 리딩을 마쳤고, 이달 말 촬영을 시작해 7월부터 뉴질랜드에 건너갈 예정이다.

-연출과 연기 중 앞으로 어느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둘 예정인가.

=솔직히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영화를 찍고 찍히는 것 모두 어려서부터의 꿈이고 연극도 마찬가지다. 상업영화 쪽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특별히 물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 만들려는 것이니까. 저예산 영화의 배급로를 모색하는 데 관심이 많다. 일본은 알려지지 않은 영화도 단관개봉의 길이 있고, 홍콩도 2만 명의 예술영화 관객이 있다더라. 찾아보면 우리도 길이 있지 않을까 고민중이다.

-연극은 계속 병행할 것인가.

=앞으로도 소극장에서 계속 훈련하고 싶다. <해일>이 막을 내린 후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공연하면서 만들어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도 많았고…. 올 연말쯤 (<해일>을) 다시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현재는 몸으로 표현하는 신체연극을 기획중이다. 실험적 창작극이 될 것이다.

-<거울 속으로>에 출연하기 전 6개월여간 일본에 머물러 일본어 실력이 좋겠다. 최근에는 영어 공부도 한다던데….

=<봄날은 간다>의 홍보차 방일한 자리에서 갑자기 한동안 떠나 있고 싶었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게 됐다. 극장 돌아가는 방식이나 독립영화가 살아남는 법 등에 대해 보고 싶었고 떠나 있으면서 이것저것 경험해보고 싶었다.

일본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썼고, 한동안 더 일본에 남으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거울 속으로>의 시나리오를 보고 한국으로 돌아 오게 됐다. 영어는 계속 공부해왔다. 바빠서 자주 못 만나지만 개인 선생님도 있고 학원에서 1대1 지도도 받는데 꾸준히 못하는 관계로 잘 안 늘더라.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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