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춘향뎐> 오디션을 보던 임권택 감독은 한 지원자의 원서를 보고 기가 딱 막혔다. 때깔 좋은 프로필사진 한장 정도는 첨부해 정성스럽게 응모해도 모자랄 판에 이 원서엔 ‘대충사이즈’의 흑백사진 한장이 참 볼품도 없이 달랑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진 속 아이의 모양새를 볼 것 같으면, 설상가상 점입가경이라. 까만 폴라 티셔츠에 아저씨 같은 기지바지를 입은 것까진 그렇다쳐도, 공사판에서 녹슨 쇠파이프를 들고 ‘나 사진찍기 겁나게 싫소’라는 말을 이마에 떡하니 써놓은, 세상만사 다 귀찮은 인상을 짓고 있었다. 사실 사건의 전모를 보자면 이렇다. 사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이 소년에게는 변변한 독사진 하나 없었고, 배우는 해야겠고, 원서는 내야겠는데, 사진이 없으면 접수가 안 된다니 할 수 없이 고등학교 사진수업 시간에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을 붙여냈던 것이었다. 어쨌든 임권택 감독은 “어허, 이거 영화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이놈 완전 똥배짱이네…”라며 이 맹랑한 아이를 기억해두었고, “나중에 깡패로 만들면 괜찮을 녀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그날 이후 시작된 두 남자의 화학반응에 대한 것이다. 임권택이라는 용매(溶媒) 속으로 조승우라는 용질(溶質)이 어떻게 섞여들어가게 되었는가 하는, 그리고 어떻게 <하류인생>이라는 용액(溶液)이 탄생되었는가 하는 케미스트리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이 고소하고 진한 때론 달콤하기까지한 독특한 ‘용질’에 대한 성분분석이기도 한, 그런 나름의 학구적인 잡담인 것이다.
이 도령이 배우 ‘조승우’가 되기까지
<클래식>을 끝낸 조승우는 치과교정을 하러가던 중에 우연히 태흥영화사 앞에 나와 있는 세 어른(이태원, 임권택, 정일성)을 보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드려야지 하고 그들 앞으로 다가갔을 때, 임권택 감독은 대뜸 “승우야, 너 태권도 좀 배워야겠다. 골프도 쳐야겠고…”라는 말을 꺼냈다. 오랜만이라는 인사도, 어떻게 지냈냐는 안부도 없었다. 무뚝뚝한 캐스팅 제안에 그 역시 “아니, 시나리오라도 주시든가…” 하는 군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저 “예”라는 확답을 내놓고야 말았던 것이다.
궁금증은 여기부터 시작된다. 왜 조승우는 임권택 감독과 다시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까. <춘향뎐>은 이 배우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크게 데이면서 찍어내려간” 뼈아프고 살아픈 영화였다. 첫 영화에, 사극에, 어느 하나 익숙한 것이 없었다. 카메라 앞에서 몸놀림은 자유롭지 못했고, 심심찮게 호통도 들었으며, “잔뜩 주눅이 든 상태”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임권택이라는 거장의 선택으로 데뷔했다는 것은 분명히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이 도령이란 딱지는 꽤나 오랫동안 그의 꼬리뼈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춘향뎐>은 조승우에게 지울 수 없는 명징한 문신 같은 영화였다. 아무리 사랑했던 연인이라도 아픈 기억이 많으면 재회를 두려워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조승우는 다시 “예”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러니까 왜?
“예전부터 임 감독님이 50, 60년대 한 남자 이야기를 준비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알았는데 다른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안에서 연령변화도 큰 역할이고, 액션도 많을 테고, 설마 날 찾을까, 전혀 상상도 못했던 거죠.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에 휙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가더라구요. ‘이제 그 옛날의 주눅든 승우가 아님을 보여드리고 싶다.’ 어쩌면 오기 같은 거였죠. 그건 ‘나 이만큼 컸어요’라는 건방진 자신감은 아니었구요. 이젠 예전처럼 답답하게 굴지는 않겠다는, 이제 좀더 적극적으로 그 배역에 달려들고, 욕심내서 도전하겠다는 그런 ‘예’였던 거죠. 사실 저에겐 도박일 수도 있는 영화였죠. 늘 그렇듯, 이미 나온 시나리오도 없는 상태고, 30대 후반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지 막막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건 무조건 해야 되는 거다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잠시, 이런 자신감의 성분들은 어떻게 조승우에게 스며들게 되었을까. 데뷔작으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게 된 열여덟 신인배우의 발걸음은 처음만큼 가볍게 내디뎌지지는 않았다. <춘향뎐>을 끝내고 영화를 하자는 제의도 거의 안 들어왔을 뿐더러 그나마 출연을 약속한 뒤에도 감독과 제작자가 “어떻게 이 도령을 우리 영화에 쓰냐”며 싸우다 결국 캐스팅이 취소되는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 “내가 과연 계속 영화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조승우는 섣불리 몸을 아무 곳에나 놀리거나, 자괴감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그런 식의 약골은 아니었다. 대신 늘 꿈꿔오던 뮤지컬 위로 날개를 펼쳤고, 대학로 무대에서 “거지에, 각설이에, 미친놈까지 상상도 못할 많은 역할들”을 맡아 데뷔작의 흔적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었다.
두 번째 영화 <와니와 준하>에서도 그는 ‘준하’가 아니었다. 햇빛 쏟아지는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책을 읽던 소년, 순정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영민’은 극의 회상부분에서만 잠시 얼굴을 내미는 아련한 첫사랑의 그림자였다. 하지만 이 짧은 등장은 조승우라는 배우의 정확한 색깔과 형태를 보여주진 않았지만 무거운 도포자락을 벗겨내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넌 누구니?”라고 묻는 영화 <후아유>를 통해 그는 적당히 현실적이고 능청스러운, 유들유들한 우리 시대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서서히 땅에 발을 내디디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찾아온 〈H>의 연쇄살인범은 언뜻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을 본뜬 듯한 역할이었다. 그러나 단정하게 자른 머리에 얌전한 걸음걸이, 정좌한 자세로 선문답을 던지는 이 살인자는 형사를 향해 뱀처럼 입맛을 다시는 ‘렉터 박사’가 아니었다. 비록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지만 공포감과 측은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이 기묘한 캐릭터는 조승우의 연기의 스펙트럼을 한 단계 넓혀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를 ‘조승우’라는 이름 석자로 불리게 만든 영화는 <클래식>이었다. 소똥으로 얼굴을 더럽힌다 해도 사그라들 줄 모르는 미소. 포크댄스를 추며 싱긋이 날려보내는 살가운 눈인사. 첫사랑의 신열에 들떠 공중을 향해 발을 굴리고, 비 오는 날 하루종일 그녀의 집 앞을 지키는 순정의 소년. 능글맞아서 사랑스럽고, 여려서 더욱 미더웠던 남자. <클래식>의 준하는 <소나기>의 소년 같은 순진무구함과 클래식 멜로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매력적인 남성성을 동시에 담아낸 캐릭터였다. 그리고 교실에서 시위현장으로, 베트남전에서 마침내 죽음으로 이어지는 유머러스하지만 비장한 흐름을 가진 이 러브스토리는 그에 대한 대중적 호기심을 최고점으로 올려놓았다.
임권택 감독과의 새로운 재회
다시 돌아가자. 그러니까 <취화선>의 한풀이를 끝내고 <장군의 아들>의 땅으로 귀환한 임권택 감독이 <하류인생>의 길벗으로 조승우를 불러들였던 것도 바로 그때였다. 조승우는 어느덧 적당한 날카로움과 알맞은 무게로 단련되어 있었고, 임권택은 여전히 연장을 멋지게 부릴 줄 아는 장인이었다. 그렇게 짧고 명쾌한 합의를 통해 촬영에 들어간 두 사람의 소통방식은 과거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물론 한신을 찍기에 앞서 임 감독은 모든 정황을 조승우에게 설명해준다. “승우야, 돈을 빌리러 갔어. 그런데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받았단 말야. 기분이 어떻겠니. 분에 받쳐 너의 가장 처절한 모습을 보여야겠지?….” 이것은 <춘향뎐>을 찍을 때 “니 앞에 예쁜 여자가 있어. 보듬고도 싶고 놀아도 보고 싶은데, 너는 양반이야. 적당히 바람기도 보이면서, 그렇다고 체통도 잃지 않는 그런 세심한 느낌을 살려야 해”라고 일일이 디렉션을 주던 것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감정선 안에서 의미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상관없다”며 많은 부분을 그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에는 과연 다 외울 수 있을까 싶을 만큼의 긴 대사를 던져주었다. “승우야, 미안하다. 고약한 감독을 만나서 니가 고생이구나. 그런데 이 신은 감정이 드러나는 아주 중요한 신이거든. 다 외우면, 니가 준비가 됐다고 생각들면 올라와라, 얼마든지 기다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감독님, 대사를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라고 용기있게 물어보았고 감독은 “네 느낌대로 해봐라, 니가 알아서 하라”고 답했다. 그렇게 점점 걱정은 믿음으로 바뀌고, 두려움은 설렘으로 치환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을 땐 주저하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했고, 이해가 되면 재빨리 포기했다. “자신을 갈가리 찢어놓고 깨버리는 영화”였음이 분명했지만, 현장 역시 공포의 공간이 아니라 편안한 놀이터로 바뀌었다.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그 시대의 어색한 대화방식을 어느 순간 즐겼고, 자신의 연기를 보며 그 당시를 떠올리는 감독의 표정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조승우는 ‘마이 컸다’.
"제가 작아보이나요?"
사실 조승우는 작다. 눈도 작고, 키도 작고, 손도 작고, 발도 작다. 화면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왜소한 체격을 가졌다. “뭐 요즘 여배우들이 워낙 크다보니 현장에서 ‘구두굽 잘라버린다’는 농담을 하기도 하죠. (웃음) 하지만 나는 내가 작다고 인식하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불만도 전혀 없구요. 내 키도 내 거고, 내 몸매도 내 거죠. 그런데 제가 작은가요?” 전혀 아니옵니다. 무릇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대로 남들이 보게 마련이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그가 등장하면 오히려 스크린이 작아 보인다. 그는 큰 사람처럼 연기하고, 큰 사람처럼 움직인다. <하류인생>에서 조승우는 눈빛이 아닌, 미소가 아닌, 그 큰 몸뚱이로 말을 건다. 점점 황폐해져가는 남자의 초상을 애절한 표정 대신 그 허한 뒷모습으로 보여준다. 조승우는 그렇게 크고 풍부한 물줄기다. 하류로 흐른다고 해도 선명한 수로자국을 남기며 가열차게 달려갈, 그리고 어느 날 상류까지 흘러들어 그 도도한 물살을 무섭게 덮쳐버리고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