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무대 위의 선비, 스크린의 ‘통치자’로, <효자동 이발사>의 배우 조영진
2004-05-20
글 : 김수경

프로필 1962년생·연극 <시골선비 조남명> <햄릿> <느낌, 극락같은> <오구>·영화 <오구> <효자동 이발사>

<효자동 이발사>에서 주인공 성한모의 인생을 쥐락펴락하는 사람은 스크린에서는 별반 행동을 취하지 않는 통치자다. 수많은 배우가 연기했던 ‘박정희’를 이 영화에서 재현한 이는 연극 배우 출신의 조영진이다.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만난 그는 스크린의 정적이고 과묵한 캐릭터와는 정반대로 쾌활하고 활달한 사람이었다. 그는 “각하도 참 오래 하셨습니다”라는 대답을 듣는 통치자의 마지막 모습처럼 20년 동안 묵묵히 연극 무대를 누빈 베테랑이다.

조영진은 대학에서 공업경영학을 전공했지만, 학과 공부보다는 극회 활동에 전념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군대를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기 위해 경성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기도 했다. 이후 “너무 편한 게 아닌가 싶어서 그만 둔” 부산시립무용단원과 “완전히 털어먹은” 연기학원 원장을 거쳐 그는 본격적인 직업배우의 길로 들어선다. 일명 이윤택 사단, 60여명의 배우가 합숙하는 독특한 극단 ‘연희단 거리패’의 정식단원으로 몸담은 세월만도 10년째다. 그가 본격적으로 스크린에 등장한 것도 이윤택의 <오구>에 나오는 저승사자 역이었다.

<오구>의 촬영감독 최두영은 쌀집아저씨 역을, <효자동 이발사>의 캐스팅 디렉터는 중앙정부부장 박종만 역을 추천했지만, 임찬상 감독이 조영진에게 권한 역은 통치자였다. 이번 배역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는지 묻자, “카리스마라는 ‘외피’보다는 권력자가 혼자 남았을 때의 고독이나 외로움이라는 부분에 포인트를 뒀다”고 답하는 그는 <효자동 이발사>에 담긴 역사의 ‘담담함’과 권력자가 아닌 ‘개인’ 박정희의 자화상을 연결한다. 덧붙여 10·26 사건 당시의 개인적인 기억에 대해서는 “고3 때였는데 그 사람이 없으면 나라에 난리가 나는 줄 알았고 매우 슬펐다. 다들 울었고 지금과 같은 비판적 태도는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이 영화에서 그가 꼽은 인상적인 대목은 성한모와 통치자의 마지막 조우장면이다. 이 장면은 찍을 당시에는 “침 넘기는 소리가 들릴 만큼” 고무된 분위기였고, 결과물에 대한 관객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정작 본인은 “조금 더 감정을 누르고 내면화시키지 못한 것이 아쉽다. 찍을 때는 몰랐는데 시사회에서 보니 긴장한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더라”며 안타까워한다. 이러한 아쉬움은 그가 생각하는 영화 연기의 핵심인 “디테일과 집중력”을 중요한 대목에서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는 질책으로 느껴진다. <효자동 이발사>를 겪은 뒤 “연극에서의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는 당분간 ‘고향’인 연극으로 돌아간다. <오구>의 지방공연과 이병훈이 연출하는 새로운 연극 <농업소녀>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사진 임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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