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은 <하류인생>과 <트로이>의 대결이다. 임권택 감독의 99번째 영화 <하류인생>은 전작 <춘향뎐> <취화선>과 달리 현대의 이야기다. 그리 멀지 않은 60~70년대를 살아온 우리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로, 자유당 정권 시절 정치판과 주먹계가 야합하던 풍경, 5·16으로 군사정권이 들어온 뒤 정관계와 건설업계의 비리가 서로 어우러지고 배신하는 메카니즘이 실감있게 중계된다. 나이든 영화인들이 보면 누구 이야기인지 알 법한 당시 영화계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까지도 풍성하게 담겨져있다. 그 속에서 조승우가 연기하는 태웅은 주먹으로, 영화제작자로, 건설업계 사장으로 옷을 바꿔입으며 신분상승을 꾀하지만 결국 하류인생을 벗어나지 못한다. 임 감독의 이전 영화와 달리 시간대를 건너뛰며 점프하는 속도감있는 연출과, <장군의 아들>보다 사실감이 한층 짙어진 액션씬을 곁들여 관객들을 유혹한다.
여기 맞붙는 <트로이>는 제작비 1억8천만달러를 쏟아부어 몇해전 <글라디에이터>가 몰고온 사극 열풍을 다시 살리려는 할리우드의 야심작이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완성된 끝도 없는 전함과 군인의 행렬이 되레 실감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검과 방패와 화살이 어우러지는 전쟁 장면의 재현은 장관을 만들어낸다. 아킬레스 역의 브래드 피트의 건장한 몸과 날렵한 동작도 충분한 볼거리이지만 <트로이>는 뜻밖에도 서사물의 재미보다 아킬레스와 헥토르, 고독한 두 영웅의 비극적 죽음을 다룰 때 풍기는 누아르영화 같은 냄새가 흥미를 끈다. 그러고보면 <트로이>와 <하류인생>은, 시대의 광기와 타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마초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