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 동안 변변한 흥행작 하나없이 죽을 쒔던 코리아픽쳐스가 올해 들어 <목포는 항구다> <어린 신부> 등 잇단 투자·배급작의 흥행 호조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코리아픽쳐스는 2001년 <친구>로 대박을 터트리며 극장가에서 큰 목소리를 냈지만 이후 저조한 흥행 성적으로 비틀거렸고, 김동주 당시 대표(현 투자·배급사 쇼이스트 대표)가 물러나면서 더욱 위세가 약해졌던 것이 사실. 숨을 고르고 도약을 위한 1년을 보냈다는 정헌조(37) 대표는 과연 코리아픽쳐스를 일으켜세울 묘책이 있을까. 김동주 대표에게서 “영화 투자는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임을 배웠지만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덤벼들 것이라고 말하는 정헌조 현 대표에게 “자신을 키워준 영화계 선배의 이탈”은 부담보다는 자극으로 작용한 듯하다. 경영학을 전공한 뒤 <동방불패> 같은 영화로 세계시장을 정복하겠다는 야심을 버리지 못해 영화사 입사를 꿈꿨으나 “가방끈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1차 서류 심사도 통과하지 못하고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는 그는 이후 금강기획 영화사업팀과 미래에셋 영화투자 심사역을 거쳐 김동주 전 대표와 함께 코리아픽쳐스를 만드는 데 일조한 인물. 대표를 맡은 지 14개월 동안 새로운 회사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애썼다는 그를 만나 앞으로의 포부를 들었다.
지난해에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외에는 배급한 한국영화가 없었다. 개점 휴업 상태였다고 봐도 되나.
적자가 100억원 가까이 됐고 유용할 수 있는 현금 또한 없었다. 완전 바닥이어서 더 망가질 것이 없겠다 싶었다. 그랬으니 아무래도 투자하는 데도 좀 깐깐하게 굴었고 거절도 많이 했다. 배급이 결정된 작품도 타이트하게 진행했고. 배급한 영화가 많지 않았던 건 김동주 전 대표가 떠나기 전 1년 동안 신규 투자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목포는 항구다> <어린 신부> 등으로 숨통이 좀 트인 건가.
두편 해서 순이익이 50억원 정도 되니까 그런 셈이다. 올해까지 100억원 정도는 가능할 거라고 본다. 내년까지 목표는 순수익 기준으로 200억원 정도다.
한때 <친구>를 투자·배급했던 회사인데 충무로가 이렇게 홀대할 수 있나 서운할 때는 없었나.
<목포는 항구다> <신부수업> <청연> 등이 다른 배급사한테 거절당했고 마지막에 우리한테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수모를 겪었다고 생각진 않는다. 작품이 좋아서 곧바로 오케이한 경우다. 늦어서 합류하지 못한 영화들이 있어 아쉽지만. 충무로 분위기가 김동주 대표가 떠났다고 해서 코리아픽쳐스도 없어졌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더라.
지난 1년 동안 가장 주력한 부분은 뭔가.
두 가진데. 먼저 회사를 정상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때를 전후로 기존 인력의 3분의 2가 회사를 나갔었다. 그 이후에는 미래에셋쪽을 설득해서 펀드 조성하는 데 힘썼고 지난해 11월에 100억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었다. 외부투자자들과 좋은 관계를 구축했고 그걸 바탕으로 내년 초에 필요하면 그 이상 금액의 펀드도 만들 거다.
김동주 전 대표는 ‘마이너리그의 메이저가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대표가 바뀌었으니까 코리아픽쳐스의 지향 또한 달라지는 건가.
‘넘버 원’을 꿈꾸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이 될 거라고 본다. 강우석 감독님이 나보고 진짜 ‘웃기는 놈’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시아 최고의 스튜디오 중 하나가 되는 게 우리의 궁극적 목표다. 내가 못하더라도 후임이 그렇게 하면 되고. 대몽대각(大夢大覺)이라고 하잖나. 크게 꿈꿔야 크게 깨닫는다고.(웃음)
그러려면 라인업 확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기존 메이저 배급사에 비해 작품 선점 등이 어렵지 않을까.
내년 목표가 3천만명이다. 그렇다고 물량 경쟁은 안 할 거다. 라인업은 7편 정도만으로 가능하다. 맘에 드는 한 작품 가져오려고 패키지로 3∼4개씩 투자하기도 하는데 우린 편당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모색하려고 한다.
편당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비법이 있나.
대박 날 영화에만 투자하면 되지 않겠나.(웃음) 우린 극장에 최대한 오래 건다는 생각이다. 1년에 20편씩 소화하려면 자사 배급 영화들끼리 박치기가 될 수밖에 없다. 제작사들한테 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수익을 안겨줘서 코리아픽쳐스에 맡기면 300만명은 기본이다는 인식을 심어주려 한다. 잘해야 2, 3년에 1편씩 만드는 제작사가 대부분인데 지속적인 재생산이 안되면 제작비가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다. 제작사들에게 수익이 많이 돌아가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협조하려고 한다. 이 뿐 아니라 배급 타이밍도 잘 맞춰야 하고 마케팅 지원도 전폭적으로 끌어올리고 해외 세일즈에도 주력하고 뭐 그래야겠지.
해외시장을 겨냥해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면.
전에는 다른 곳에 해외 세일즈를 맡겼는데 이제는 우리가 한다. 이번 칸영화제에서도 처음으로 자체 부스를 차렸다. 굳이 북미시장을 뚫지 않아도 된다. 아시아 시장만 하더라도 잠재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 일본 바이어들 만나면 배용준, 원빈 나오는 영화라고 하면 묻지 않고 달려든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만 하더라도 해외 수익이 국내 수준을 넘어설 것이다. 우리 힘만으로는 힘들겠지만 국내에서 직배를 완전히 실현하고,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면 될 것 같다. 파이를 늘리되 파이를 나눠먹는 사람은 줄이려는 거다. 그러려면 우리 입장에선 매 작품에 총력을 쏟아야 하는데 7편 정도가 1년에 핸들링할 수 있는 정도다.
떡잎부터 흥행작을 알아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
<어린 신부>도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다. 스토리 자체가 특별하지 않은데다 문근영 또한 <장화, 홍련>밖에 없고. 김래원도 <…ing>로 실패를 맛봤고. 그런데 남성영화만이 줄줄이 나오던 때에 관객이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고 봤다. 특히 중·고등학생을 타깃으로 한 영화가 없지 않았나. <신부수업> 또한 처음하고 달리 지금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가 좋다. 앞으로도 라인업을 확보해놓고 푸는 게 아니라 어떤 영화가 성공할 수 있는지를 먼저 머릿속에 그려넣고서 걸맞은 작품을 수급할 계획이다. 조만간 기획팀을 따로 꾸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2개 영화팀이 있는데 각각 작품에 매달리고 있다보면 새로운 영화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트렌드를 놓치게 될 수 있다. 그걸 막기 위해서다. 작품 수가 적다보니까 배급 타이밍도 중요하고 그러려면 경쟁사만큼 경쟁작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
<청연>은 순제작비가 약 80억원이 된다고 들었다. 내년 라인업 중에 제작비가 50억원이 넘는 대작들도 많고.
투자 결정할 때 <청연>은 재앙이다, 정헌조 인생 끝났다고 하는 사람 많았다. 그런데 미국 촬영이 끝난 지금 국내나 해외나 자신있다. <청연> 대사의 40%가 일본어인데다 일본 관객들이 좋아하는 슬픈 멜로영화다. 내년 1월쯤 개봉할 예정인데 올해 부산영화제 때 15분 정도 미리 보여줄 예정이다. 곧 시나리오가 나오는 이명세 감독님의 <조선의 형사>(가제)도 있다. 조선시대 여형사를 다룬 영화로 <다모>보다는 한발 더 나아간 영화다. 이 감독님이 할리우드에서 작업준비하시는 게 더뎌져서 짬이 났는데, <영웅> 같은 사극으로 아시아 시장을 석권한 다음 할리우드로 가셔도 늦지 않다고 본다. 코리아픽쳐스 입장에선 이명세 감독이나 <청연>의 윤종찬 감독하곤 끝가지 가고 싶다. 좋은 감독과는 언제나 같이 작업하고 싶은 것 아닌가. <레드 스노우>라는 일제시대 종군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의 회고담도 준비 중인데 이것도 제작비가 80억원 정도 된다. 시나리오는 나왔고 감독을 물색 중이다. 국내외 가리지 않고 유명 감독이라면 섭외할 계획이고, 실제로 진행중이다.
여러 편의 대작을 굴릴 만한 제작 관리 능력이 있나.
지금까지 배급한 한국영화가 20편이 넘고 단지 투자만 한 게 아니라 공부도 많이 했다. <청연> 같은 경우 지난해 6월에 투자하기로 해서 9월에 크랭크인하기로 했는데 8개월을 뒤로 밀었다. 앞으로도 준비가 덜 됐는데 성급히 덤비진 않을 거다. 2주 안에 찍기로 하고 60만달러로 미국에서 30분 분량의 비행장면 촬영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사전준비가 철저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비행장면 하루 촬영 비용이 무려 10만달러다. 준비가 없었으면 제작비 오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다.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다.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외화 배급은 안 하나.
내년까지는 구매하는 게 없다. 갖고 있는 외화가 14편쯤 되는데 마틴 스코시즈의 <애비에이터>를 제외하고는 다 버릴 거다. 부가가치에 비하면 국내에서 외화시장이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자금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고 한동안은 한국영화에 집중하고, 한국영화로 승부를 걸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