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과거를 다루는 새로운 경지, <효자동 이발사>
2004-06-02
글 : 변성찬 (영화평론가)

도피나 토로 아닌 조용한 성찰 <효자동 이발사>

정말 ‘이상한 일’이다. 2004년 상반기 한국영화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탐색하고 있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연이은 강진(强振)으로 흔들리던 우리의 ‘스크린’에, 마치 그 여진(餘振)과도 같은 두편의 영화가, 동시에, 찾아왔다. 신인감독 임찬상의 <효자동 이발사>, 백전 노장 임권택의 <하류인생>.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다. 유운성의 말처럼, 의미심장하게 이창동의 <박하사탕>(2000년 1월1일 개봉)으로 21세기를 맞이한 한국영화는, 지난 4년간 줄기차게 과거(기억)와 씨름해왔다. 다양한 변주를 이루며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과거로의 여정. 그 시간 여행의 궤적은, 이제 하나의 커다란 순환을 그려내는 듯하다. ‘광장의 기억’에서 ‘밀실의 기억’으로, 그리고 다시 ‘광장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원환적 순환.

<박하사탕>의 영호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광장의 기억 속의 외상적 공간(70년대 말 공단, 80년 광주, 80년대 공안경찰 고문실, 90년대 말 IMF)을 찾아다녔다. 그 자로 잰 듯한 인위성과 공적 기억의 외상적 무게에 대한 저항이었을까? <박하사탕> 이후 한국영화는 한동안 밀실의 기억에 집착해왔다(2001년 <친구>에서 2003년 <말죽거리 잔혹사>에 이르는 그 수많은 ‘복고영화’들). 그 사소함에 대한 반작용일까? 2004년 한국영화는 <실미도>와 <태극기…>를 통해 다시 한번 ‘광장의 기억’을 소환한다. 이른바 ‘남성 노스탤지어 영화’에서 ‘남성 멜로(액션)드라마’로의 방향 전환은, 그 변화 과정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제, 그 요란한 ‘총격전’의 멜로적 과잉에 대한 교정의 몸짓이기라도 하듯, 조용한 성찰의 미덕을 갖춘 두편의 영화가 그뒤를 잇고 있는 것이다.

가족 안에서 역사와 싸우는 ‘아버지’ 성한모

<효자동 이발사>의 이발사 성한모(송강호)는, <박하사탕>의 영호(설경구)가 보여주었던 행적을 다시 한번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개인적 인생 역정이 공적 기억 속의 외상적 순간들과 끊임없이 얽혀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한모는 <박하사탕>의 영호처럼 ‘역사’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를 끊임없이 찾아온다. 그가 거주하는 ‘효자동’은 평범한 소시민의 생활 공간이면서, 동시에 권력의 핵심부에 인접해 있음으로 해서 불가피하게 역사적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곳에서 그는 4·19 시위대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오인’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청와대로 진입하는 5·16 쿠데타의 ‘탱크’와 마주치기도 한다. 그런데,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거리의 역사’는 단지 그의 곁을 스쳐지나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박하사탕>의 영호에게처럼 치명적 상흔을 남기지는 않는다. 그가 적당히 무지와 무관심을 가장할 수 있는 한, 그 역사의 격변은 단지 조금 당황스럽고 불안한 것에 불과하다. 늦은 밤 지축을 뒤흔들며 지나가는 탱크와 마주치는 순간 성한모가 느끼는 당황과 불안은, 자고 일어나서 그 소식을 접한 대다수 소시민들의 그것과 크게 다를 이유가 없다. 스쳐지나가는 ‘거리의 역사’에 관한 한, ‘효자동’은 특별한 지명이라기보다는 그 시대를 살아가던 보편적인 소시민적 삶의 심리적 공간일 수 있다. 문제는 그 무지와 무관심의 가면이 끝까지 유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가 그의 삶(직업과 가족)에 침입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효자동 이발사>의 두드러진 특징은 주인공 성한모가 ‘아버지’라는 점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복고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부재하거나 그 존재감이 희미한 대상에 불과했다. 그 ‘소년들’은 대개 아주 일찍 가족에서 벗어나 세상과 직접 맞서야만 하거나, 맞서고자 한다. 그들은 고아이거나, 고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마치 그 시대에는 온전한 아버지가 없었다는 듯이, 생물학적 아버지들은 서사의 중심에서 지워져 있었다. 그 자신 아버지이기도 했던 <박하사탕>의 영호 역시 온전한 아버지가 되지 못하며, 가족 밖에서 역사의 상흔과 맞서 싸우다 자멸해간다. <효자동 이발사>에서 아버지 성한모는 끝까지 가족 안에서 역사와 싸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말처럼 ‘박정희 시대를 거친 아버지 세대에 대한 소박한 위로’이고, 그 시대 아버지들에 대한 따뜻한 헌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위로와 긍정의 시선에는, 집요한 따져묻기 또는 질책이 담겨 있기도 하다.

평범한 소시민으로서의 성한모는 무엇보다 ‘눈치보는 자’이다. 그런데 그 눈치보기와 정치적 순박함은 무지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생존의 지혜에 가까운 것이다. 그는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권력자의 시선 앞에서 불안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정행위’를 목격한 연탄장수 앞에서도 떳떳하지 못하다. 그는 4사5입이라는 체제의 논리를 여자를 설득하는 데 적절히 이용할 줄도 안다. 이러한 그의 눈치보기와 무지의 가장이 위기에 봉착하는 것은, 그가 청와대 이발사가 되어 권력과 연루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정확히 아들 ‘낙안’이 때문이다. 아들 낙안이가 고문을 받고 다리가 마비되는 것은, 그의 자발적인 눈치보기의 결과이다.

아들의 풍자, 기다림, 승리

보기 드문 ‘아버지’의 영화인 <효자동 이발사>가 줄곧 아들 ‘낙안’이의 내레이션으로 이끌어지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 화면 밖의 목소리는 아버지의 비루한 삶에 대한 위로와 긍정의 온기가 배어 있기도 하지만, 끝내 일정한 풍자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아들은 가족 밖으로 뛰어나가는 방식으로 아버지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안에 있으되 스스로 성장하기를 거부하면서 끈질기게 기다리는 방식으로 아버지와 대결한다. 이러한 아들의 자세로 인해, 아버지는 가족 안에 머물 수 있다. 그 보이지 않는 대결은 주로 신체적 전이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청와대 오찬에 초대된 날, 성한모는 스스로 아들의 뺨을 때리고, 아들이 보는 앞에서 조인트를 까인다. 그 마음의 상처 탓인 듯, 낙안이의 고문 후유증은 다리 마비로 나타난다. 영화 속의 도사가 암시하듯, 낙안이의 마비는 육체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었던 것이다. 그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자는 아버지 성한모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서 낙안이는 걷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니라, 걷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낙안이의 몸은 자라지만, 화면 밖 그의 목소리는 아버지의 비굴함에서 비롯된 외상적 사건을 겪는 그 시점으로 고착되어 있다. 아들은 집요하게 기다리면서, 아버지 자신의 마음의 병을 고쳐주기를 촉구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과와 변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고집스럽게 아버지의 삶 전체 속에 배어 있는 비굴함에 대한 교정을 요구한다. 아버지 성한모가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세 가지 의식이 있다. 첫째, 눈치보기의 극복. 그가 늘 두려워했으며, 그 앞에서 비굴해지던 권력의 시선을 당당히 마주 볼 것. 단순히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훼손시킬 것(‘용안’의 눈을 파내는 성한모). 둘째, 자신의 과거의 부정행위를 정화할 것(투표용지를 삼켜 부정선거에 일조했던 그는, 눈을 파낸 작은 용기를 삼킴으로써 고통스러운 배설의 속죄 의식을 치른다). 셋째, 잃었던 자신의 말을 되찾을 것. 낙안이는 성한모가 구해준 약을 먹고 바로 일어서지 않는다. 아버지가 신군부 앞에 과감하게 할말을 함으로써 자신처럼 포대에 넣어져 집 앞에 던져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걷기 시작한다. 두둥실 떠오를 듯 행복한 모습으로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부자의 작은 승리는, 충분히 그만한 대가와 도전을 치르고 난 뒤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거를 직시하는 초현실주의적 우화

<효자동 이발사>는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인 ‘효자동’과 그 ‘시대’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적지 않은 공을 들인 영화이다. 비슷한 세대의 다른 감독들의 많은 복고영화들(‘남성 노스탤지어 영화’)과는 달리, 집요하게 역사적 기억의 현장과 대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그 외상적인 역사적 시공간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종의 초현실주의적 화법으로 그 시공간이 주는 역사적 무게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비껴간다(낙안이의 고문장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무려 10억원을 들인, 시대의 변화를 재현하기 위해 2번의 리노베이션까지 거친 매우 ‘사실적’인 ‘효자동 거리 오픈세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뜻밖에도 매우 ‘비사실적’인 동화풍의 우화이다. 그 우화적인 화법으로 그려진 어떤 소시민 아버지의 성공적인 성장기는, 비록 작지만 소중한 승리의 서사이면서, 바로 앞서 있던 두 ‘남성 멜로드라마’의 비극적 패배의 거대서사와 구별된다. 하지만 그 전이와 응축을 통해 상징화되어 있는 이야기 속에는, 신체적 고통으로 기억되는 그 시대의 ‘외상’(trauma)이 일종의 ‘왜상’(anamorphosis)적 형상으로 잠복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시선과 화법은 그동안의 복고영화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것은 ‘그때 나는 아이에 불과했다’ 또는 ‘오빠는 고등학교 때 이랬단다’라는 도피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때 당신(아버지)은 그 자리에 없었다’라는 고아의식의 토로도 아니다. 그 두 가지 모두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제3의 시선’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의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과거 청산’의 미지근함이다. 잔뇨감 또는 체증처럼 남아 있는 역사의 무게. 어쩌면 한국영화의 집요한 과거 탐색은, 현실에서 맛보지 못한 속시원한 ‘배설 욕구’의 분출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인 것은, 한국영화가 그 되풀이되는 탐색 속에서 비로소 그 과거(공적이면서 동시에 사적인 기억)를 직시하는 시선과 태도와 방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들의 시점으로 그 시대의 아버지를 복원시킨 <효자동 이발사>와 아버지의 시점으로 그 시대를 결기어린 반-멜로의 화법으로 이야기하는 <하류인생>이 그 소중한 징후이다.

변성찬/ 영화평론가 ibs04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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