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여행을 가던 킴벌리(A. J. 쿡)는 고속도로에서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는 환상을 본다. 그리고 환상의 징조들이 현실에 출현하자 그녀는 국도 진입로를 가로막는다. 그런데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곁에서 곧 대형사고가 발생하고 사람들은 경악한다. 한편, 킴벌리는 1년 전 180기 폭발사고의 생존자들이 겪은 죽음과 연관되어 있음을 감지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클레어(알리 라터)에게 도움을 청한다. 생존자들은 예정된 죽음을 피하기 위해 계획의 허점 찾기에 몰두하지만, 이미 죽음은 예상과 법칙 바깥에 있다.
<스크림>이 공포영화의 법칙을 낱낱이 해부해버린 이후, 더이상 법칙은 무의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데스티네이션2>는 ‘법칙이 무너진 공포영화의 세계에서 보는 자만이 죽음을 지연시킬 수 있다’라고 천명하며, 전편처럼 죽음의 ‘힌트’- 불길한 징조 만들기에 주력한다. 전조라고 예상되는 것을 카메라가 비추는 순간, 죽음과의 게임은 더 흥미롭다. 계획의 허점을 찾기 위해 시신경은 부단히 긴장한다. 게다가 볼 수 있는 자의 자격은 환영을 보는 킴벌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누구나 볼 수 있고, 무관심했던 주변의 사물들이 미래를 예견하는 점술도구, 아니 흉기처럼 보일 때, 조바심은 증폭된다. 동시에 구체적인 실체인 살인마, 괴물처럼 ‘죽음’이 끊임없이 가시화되면서 불안감은 누그러진다. 그런데 여기서 ‘죽음’이 모습을 드러내는 또 다른 방식은 희생자들이다. 사고장면은 TV에서 강박적으로 반복되며, 사람들의 죽음은 징조의 실현으로 처참하게 전시된다. 이때, “아직 내 차례가 아니야”라는 안도감은 가학적 쾌감과 맞닿아 있다. 영화의 오프닝, 180기 사고에 관한 TV프로그램에서 한 신비주의자는 “보이는 세계의 이면을 봐야 살 수 있다”고 설파하지만, 결국 보는 것이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