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인생>의 역사와 개인은 어떻게 서로를 소외시켰나
<하류인생>에 대한 최근의 비평은 대략 이런 식으로 요약된다. ‘최근 남성감독들의 영화 중에서 <하류인생>만큼 과거에 대한 낭만적 시선을 거두고 역사를 대면한 영화는 없었다. 이건 한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몇 안 되는 (거의 유일한) 시선이다.’ 물론 여기에는 아흔아홉 번째 영화에 이르러 힘을 빼고 비애에 찬 시선으로 과거와 대면하는 노장에 대한 놀라움도 포함된다. 그러나 나의 의문은 영화 <하류인생>보다는 이 영화에 대한 줄곧 일관된 비평들에서 시작된다. 정승훈은 “근대의 숙제에 이토록 매달리는 작가는 이 노장밖에 없다”(<씨네21> 455호)고 말하고 허문영은 이 영화를 “처참한 자기고백”(<씨네21> 453호)이라고 평한다. <하류인생> 이후 쏟아져나온 대부분의 평은 역사에 대한 임권택의 시선을 기존의 복고영화들에서 나타나는 유아기적 환상과 차별화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풀리지 않는 부분, 왜 특정 시점에서 영화가 진행되는지, 도대체 “맑아질 조짐을 보였다”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등에 대한 의문은 남겨두고 있다. 이들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임권택의 기존 영화문법에서, 그 흐름에서 찾으려고 한다.
역사에 대한 순진한 항변
그러나 이 글은 거칠게 말해, <하류인생> ‘자체’에서 보이는 역사와 개인의 만남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하류인생>의 “처참한 자기고백”은 의도적으로 망각하려 했던 과거의 순간들을 눈 딱 감고 한번에 아우르려는 뒤늦은 “욕망”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나는 특정한 과거의 시간을 박제해놓고 그 시간을 낭만적으로 향수하는 영화들과 15년의 격변기를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훑어버리는 <하류인생>이 역사에 대한 본질적 시선에 있어서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발견한다. 시대는 언제나 가해자다. 다만 <하류인생>의 시대는 복고영화의 정체된 시간과 달리 표면적으로는 파노라마처럼 재빠르게 펼쳐지고 있다는 점, 그래서 향수어린 시선으로 “맞아, 그때는…”이라고 추억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를 주고 있지 않을 뿐이다. 복고영화는 너무 느리고 <하류인생>은 너무 빠르다. 이 둘은 모두 시간을 비현실화하면서 개인과 역사의 만남을 냉정하게 성찰하지 못한다. 역사에 의해 “괴물”이 되어가는 개인. 물론 이 역시 하나의 문제제기일 수는 있으나 그 괴물이 된 개인의 항변은 늘 “어쩔 수 없었어”에서 멈춘다. 그건 매우 단순하고 순진하지만 모든 문제를 한번에 봉합시켜버리는, 게다가 연민마저 불러일으키는, 세상에 대한 효과적인 시선이다.
그렇다면 <하류인생>에서 역사와 개인의 만남은, 사실과 허구의 조우는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가. 먼저, 이 영화가 “공적” 역사를 소환하는 방식과 그 소환된 역사가 개인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15년의 복잡다단했던 실제 역사적 시기를 한편의 영화에 담기 위해 임권택이 사용하는 장치는 자막이다. 총 일곱번 등장하는(마지막 자막을 제외하고) 자막은 라디오 방송이나 신문 헤드라인, 혹은 확성기의 음성과 함께 출현하여 당시의 역사적 현장을 재생한다. 그러나 실재성을 불어넣기 위해 사용된 이러한 장치들은 오히려 생생한 역사적 순간들을 공적인 영역 안에 가두고 영화 속 인물들, 특히 파닥거리는 태웅의 현실로부터 분리시킨다. 태웅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지만, 그 배경이 되는 역사는 자막에 의해 기록되고 매체를 통해 객관성을 획득한 사실(fact)이 된다. 우리는 태웅의 삶을 통해 역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호명하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태웅의 삶을 이해한다. 다시 말해 자막과 역사를 부르는 라디오 방송은 언제나 특정한 태웅의 행위를 선행하여 제시되고 있다. 감독이 선택한 일곱번의 시대에 맞춰, 그 시대적 분위기에 의해 태웅은 건달 짓을 그만두거나, 영화제작을 하다 망해 다시 체계적인 건달 세계로 입문하거나, 감옥에서 석방되거나, 정보부와 거래를 하거나 배신을 당한다. 혹은 역사적 순간의 몇몇은 태웅의 지극히 사적인 삶의 이야기들과 정확히, 그러나 매우 뜬금없이 맞물리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1961년 5월16일 만삭의 혜옥을 태운 차가 탱크로 가득 찬 거리를 지나가거나 1968년 1월22일 무장간첩이 청와대를 습격한 날 혜옥이 집을 나가거나 하는 식이다. 우연으로든, 필연으로든 태웅이 그 시대를 살았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태웅은 결코 역사를 체화하지 않고 자막에 의해 공적인 역사가 규정되고 나면 아무런 의심없이 그 흐름에 맞추어 삶의 태도를 수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역사와 동시적으로 맞물려 상처입거나 싸우는 대신, 역사의 흐름을 관망하며 한발 늦게, 혹은 한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영화 내에서도 태웅은 유달리 역사의 현장, 군중이 밀집한 장소에는 뒤섞이지 않고 한발 물러나 지켜보는 태도를 견지한다. 4·19, 5·16 때도 태웅의 시선은 골목 안, 혹은 차 속에서 ‘밖’을 향하고 있으며 그는 깡패 무리의 속죄행진, 학생들의 시위도 언제나 열외가 되어 관망한다.
여성의 반복되는 희생제의
한편, 이 영화에 애매함을 보태주는 결정적인 요소는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마지막에 제시된 “태웅은 1975년 전업을 하고 맑아질 조짐을 보였다”는 자막이다. 혜옥은 태웅에게 맑고 순수했던 사람이 권력에 기생하면서 탁해졌다고 말한 바 있다(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하류인생> 전체 중 가장 우습다고 생각한다. 남편에게 거의 강간당하다시피 하고서도 혜옥은 태웅에게 너무도 교양있는 훈계를 날린다). 그러니까 태웅은 애초부터 탁한 사람이 아니라, 원래는 괴물이 아니었는데 부패한 직업 때문에 변질된 것이라는 얘기다. 전업을 하고 맑아질 조짐이 보인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조폭과 정치인 중 더 나쁜 건 이중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정치인이라는 말 역시 태웅이 “순진한” 깡패였을 때보다, 정치인과 거래를 시작한 뒤 탁해졌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조폭과 정치인 사이에서 비열함의 상대성을 읊는 그 순진함이라니. 더구나 맑음과 탁함을 가르는 기준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영화에서 승문의 예만 보아도 지식인이(그가 역사 안에서 투쟁을 할 때조차도) 맑음을 체화한 인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대신 감독은 맑음과 탁함을 구별하고 정의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혜옥을 가장 맑은 인간으로 그리고 있는 듯하다. 종종 문어체 어투로 태웅을 가르치고 충고하면서도 결정적 순간마다 태웅을 받아들이는 어머니, 선생님 같은 여인. 그녀는 태웅과의 관계가 삐걱거릴 때마다 태웅의 아이를 생산한다(영화에서 혜옥은 태웅과 결혼 전 임신 중이고 영화제작에 망해 단칸방 신세일 때도 임신 중이며, 가출했다 집에 돌아온 뒤 또 임신을 한다. 물론 마지막 장면에서 유산의 암시가 나타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 가족사진에서는 또 한명의 아이가 있다). 영화 후반부 그녀의 다리 사이로 흐르는 선명한 피는 약간의 비약을 덧붙이자면, 태웅의 죄를 모성으로 대신 짊어지는, 혹은 태웅을 정화시키는 일종의 희생 제의로 보이기까지 한다.
모든 변화를 타락으로 규정하는 역사관
혜옥을 향한 감독의 시선을 통해 그가 이 영화에서 집중하고 있는 바는 역사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어떠한 순간에도 “변하지 않을 존재”임이 드러난다. 상필, 승문, 태웅의 “변질”에 초점을 두는 <하류인생>은 그 변질의 맥락이나 전후관계를 따지기보다는 “변하는 것은 모두 나쁘다. 역사가 나를 망가뜨리기 전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듯하다. 그러므로 태웅이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용서하며 난데없이 “천륜”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해될 만하다. 혜옥 역시 역사를 향해 질문을 던진 적 없고 태웅의 부패한 돈으로 부잣집 마나님처럼 살고 있지만, 그녀는 태웅에게 언제나 그대로인 어머니, 누나, 아내이므로 진정 맑은 존재인 것이다.
이제 <하류인생>의 그 긴 15년과 빠른 전개과정과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하나의 이야기로 모이게 된다. 감독에게는 애초 역사와 그 안의 개인의 관계에 대해 성찰할 의도가 없었던 듯하다. 그는 대신 그와 같은 시대에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역사와 분리된 인간에 대한 미련을 말하고 있다. 나는 모든 변화를 변질로, 타락으로 이해하는 노장의 유아기적 두려움과 격변의 세월을 한편의 영화 안에 수집하며 역사를 아우르려는 노장의 때늦은 욕망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