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김일우씨가 지난 13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바라본다. 데뷔작 <어둠의 자식들>에서 곧 개봉할 유작 <신부수업>에 이르기까지 60여편의 빼곡한 출연작 목록은 한국영화 중흥의 궤적과 고스란히 맞물린다. 이장호, 배창호, 이명세, 강우석, 신승수, 박철수, 곽재용에 이르기까지 함께 작업한 감독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그의 25년 영화연기가 최근 한국영화의 흐름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 카메라의 중심에 서는 위치는 아니었기에 그의 스틸사진 한장을 찾기 어려운 것이 영화산업의 냉엄한 현실이기도 하다. 조연배우 김일우. 동랑과 목화를 거친 연극판 생활, 기획사 태멘과 명보극장의 기획자, 출판사 대표, 신승수 감독의 <스물일곱 송이의 장미>를 제작한 제작사의 대표, 그리고 다시 돌아와 생의 종착역이 된 배우의 자리.
초등학교 4학년 때 “병상의 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리려고 배우들 흉내를 낸 것으로 시작”된 영화배우의 꿈은 1980년 이장호 감독의 <어둠의 자식들>에 출연하며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조감독이던 배창호 감독은 “제기동 뒷골목에서 집단폭력당하는 장면을 찍는 데 많이 고생했다. 나중에 편집에서 많이 날아가서 아쉬웠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에게 대종상과 아태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안겨준 <학생부군신위>의 박철수 감독이나 배우 정진영은 그를 ‘연기자’나 ‘배우’보다는 늘 남을 먼저 생각하는 ‘영화동료’로 기억한다. “배우는 배역을 받는다”라고 말하던 고인의 표현처럼 그는 “노소를 막론하고 먼저 인사하는 중견배우, 잘 안 풀리는 사람에게 찾아가 즐겁게 해주는 맏형, 언제나 남의 일을 먼저 하는 오지랖,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고 너그러운 인격자”로 수많은 영화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조감독 시절부터 절친하고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강우석 감독은 “한국 영화인 중에 그와 관련된 즐거운 기억이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꼭 스타들만 큰 별이 아니고, 정말 그는 한국 영화계의 큰 별이었다”라며 고인이 죽어서도 한국영화 발전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목포는 항구다>를 찍으며 자신의 병세를 알았지만 그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알리지 않았다. <목포는 항구다>와 그의 유작 <신부수업>을 함께한 남진호 PD는 “첫 촬영 때 스케줄 때문에 곤란을 겪게 해 드린 기억이 있다. 막연히 드라마 <좋은 남자> 때문에 그러시는 줄 알았는데. 영화가 끝나고 그제야 병환을 말씀하시기에 너무 죄송해서 사과를 드렸더니 배우는 작품이 먼저니까 괜찮다고 웃으며 위로하시던 기억이 선하다”라며 아쉬워했다.
“대체로 죽은 사람은 언제나 훌륭하게 마련이지만, 김일우는 원래 훌륭한 사람”이라던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의 술회처럼 <엽기적인 그녀>의 다섯 쌍둥이를 혼자 연기했던 1인5역과 <투캅스>를 비롯하여 여러 작품에서 인간적인 형사로 그려지던 그의 모습은 이제 더이상 우리 곁에 없다. 영화제가 새로운 감독을 언제나 뒤늦게 발견하는 것처럼, 저널이나 관객도 언젠가 그의 빈자리를 뒤늦게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