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사랑싸움에는 계급장 떼! <여선생vs여제자>
2004-07-05
글 : 이영진
사진 : 정진환

“오동도가 어딘지 알아요? ” 이곳 사람이 아니고선 알 턱이 있나. 장규성 감독은 직접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설명한다. “저기 보이는 게 오동도예요. 보이죠?” 장대비에, 게다가 안개까지 시계(視界)를 방해하고 있으니 여간해서 보일 리 없다. 외지 사람 눈엔 가물가물한 점 몇개만이 울렁거릴 뿐이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더니 장규성 감독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모니터가 놓여 있는 옆교실로 향한다. 뒷모습이 “고지가 바로 저기야!”라고 외친 다음 막사로 향하는 대대장 같다. 여수의 한 초등학교에 짐을 풀어놓고 한달 넘게 머물며 촬영을 진행하고 있는 영화 <여선생 vs 여제자>. 55회 전체 촬영 분량의 반을 끝마쳐서인지 감독뿐 아니라 다른 제작진의 얼굴에도 여유가 흐른다.

그러나 이도 잠시. 리허설부터 장 감독은 배우들을 몰아붙인다. 날씨가 흐려 실제 촬영은 다음날로 미뤄두고 테스트만을 하는 것이지만 감독은 실전을 치르는 것처럼 좀더 볼륨을 높이라고 요구한다. “지금은 너무 차분해. 대사 물려도 되고 상대 대사 잘라먹어도 되니까 진짜 개(싸움 하는 것)처럼 붙어봐!” 이날 촬영은 새로 부임한 총각 선생 권상민(이지훈)을 두고 여미옥(염정아)과 고미남(이세영)이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 사제간이라고 하지만 사사건건 서로를 트집잡아 눈꼬리를 치켜뜨는 여미옥과 고미남의 다툼은 권상민의 꿈에서까지 계속되고, 참다 못한 권상민이 “이제 그만!”이라고 대치 상황을 갈무리하는 설정이다. 감독은 특히 이세영에게 “스스로 애라고 생각하고 연기하면 안 된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잘라 말하면 <여선생 vs 여제자>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선생과 제자가 계급장 떼고 한판 붙는다는 스토리. <선생 김봉두> 촬영 때 한 초등학생이 “오빠도 섹스 해봤어?”라는 질문을 던져 어떤 스탭을 당황하게 했다는 후일담에서 장 감독은 이번 영화의 힌트를 얻었다. “애라고 해서 애가 아니구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똑같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굳이 지방 초등학교라는 배경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장 감독은 이에 대해 “<선생 김봉두>의 속편이라고 봐도 된다”고 답한다.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선생 여미옥을 서울로 전근가기 위해 안달하는 인물로 그린 것도 이 때문. 전교생이라고 해봤자 250명인 여수의 한 초등학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이 영화는 코믹한 설정 아래 지방 학교의 학생뿐 아니라 선생님들의 수도 줄어가는 현실에 대해 “누군가는 이곳에 남아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느냐”는 메시지를 장착할 계획이라고. 8월 중 개봉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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