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내 남자의 로맨스> 배우 이유진
2004-07-08
글 : 오정연
사진 : 이혜정
야무진 현실주의자의 단념, 그리고 출발

월요일 밤이면 이 여자의 솔직하고 대담한 수다에 속이 다 후련해진다. <야심만만>에서 그는 속이 빤히 보이는 내숭부터 모르는 척 넘어가주는 음흉한 속셈까지 남김없이 까발리면서 웃어댄다. 왠지 그와 함께라면 나를 차버린 남자 친구의 욕까지도 밤새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타의 이미지와 실체가 일치할 리는 없겠지만, 이유진만은 그 간극이 좁아 보인다. 그러나 그 예상도 절반쯤은 빗나간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CF 모델로 얼굴을 알렸지만, 이유진이 대중에게 각인된 것은 여러 편의 시트콤과 드라마를 통해 선보인 ‘홀딱 깨는’ 왈가닥 이미지. 그렇게 비슷한 이미지를 반복해 보여주다 보니, 자기 안의 다른 모습, 다른 가능성을 꺼내보이고 싶어진 모양이다. “진중한 캐릭터”라는 애초의 설정이 달라져서 중도 하차를 감행한 <불새>의 일화만 봐도, 변신에 대한 그의 갈망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없어도 얘기에 전혀 지장이 없어 보였어요. 내가 나오는 장면은 중간에 쉬어가는 CF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드라마가 종영되기 전에 그만뒀죠.”

영화 데뷔작 <내 남자의 로맨스>에서 그는 현주(김정은)의 절친한 친구로 출연한다. 입이 거친 꽃집 아가씨로 이유진은 또다시 털털한 캐릭터를 선보일 예정이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못을 박는다. “드라마는 철저히 주인공 위주지만 영화는 아니잖아요. 저를 포함해서 현주의 절친한 친구들인 5총사가 없으면 영화가 진행이 안 되거든요. 똑같이 밝은 이미지라고 해도 전혀 다르죠. 영화에선 일부러 오버 안 하면서 캐릭터를 보여주려고 많이 연구했어요.” 그러고도 그는 조바심을 낸다. “저 괜찮게 나와요? 제 캐릭터가 보여요?” 동행한 영화사 직원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질문 공세를 퍼붓는 그의 모습에서, 첫 영화에 대한 떨림과 애착이 그대로 전해진다.

“돈많은 사람이 제일 부러워요. 주머니 사정 따지지 않고, 원하는 일을 하고 싶거든요. 영화나 연극에만 전념하면서 원하는 길을 가는 분들도 있지만, 가족들은 뒤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겠어요? 전 그런 건 절대 못해요.” 그는 ‘예술’ 운운하면서 남한테 피해를 줄 수는 없다는, 단호한 현실주의자다. “사실 전 남들이 ‘잘한다’고 해줘야지 잘해요.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냥 무시해버리죠. 99년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수상권인 최종 7명 안에 뽑히지 못하고 나서, 모델 꿈을 버린 것도 그 때문이에요.” 언뜻 쉽게 포기하는 자의 나약한 단면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단념 그리고 출발은 자기 안의 또 다른 능력을 믿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유진이 누군가. 그는 토크쇼나 드라마에서 누구보다도 야무지게 자기 몫을 해내는 사람이다. 카메라 앞에 선 그가 아름다운 것은, 털털한 이미지 뒤에 숨은 날카로운 현실감과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의상협찬 Sharagano·스타일리스트 윤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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