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가에서 소년은 자기가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소녀가 자기에게 사랑을 고백하려 할 때 그걸 고통스럽게 외면한다. 아니, 차라리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누구인가. 그것은 육신과 영혼의 분열 사이에서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존재론적 질문이다. 여기서 이 질문은 데카르트적 회의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적 분류에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냐하면 지금 영혼은 인간과 거미의 두 개의 육신 사이에서 자기가 머물 곳을 정하기 위해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년은 자기의 존재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험난한 여행길을 걸어서 떠나는 대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갈 것이다. 여기는 테베가 아니라 뉴욕이며, 이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은 소포클레스가 아니라 샘 레이미이다. 소년은 고통스럽게 자문한다. 나는 인간의 자리에 있는 곤충인가, 아니면 곤충이 되어버린 인간인가 <스파이더 맨> 첫 번째 에피소드는 거기서 끝났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는 바로 그 장면에서 시작한다.
샘 레이미는 전편에 비해서 특수효과 팀을 다루는 데 훨씬 능수능란 해졌으며, 스파이더 맨을 뒤쫓아 자유자재로 빌딩 사이를 오가는 카메라의 무중력에 가까운 상하좌우 율동은 환호성을 자아낼 만 하다. 특히 스파이더 맨이 닥터 옥터퍼스와 빌딩에 매달려 치고 받는 장면은 그것이 컴퓨터 그래픽이라고 전제하더라도 경탄할만한 지경의 액션을 연출한다. <스파이더 맨>은 <매트릭스>보다 특수효과 액션에서 일보 더 나아갔으며, 샘 레이미는 영리하게도 2억 1천만 달러짜리 초고가 영화를 마치 B급 액션활극처럼 시침 뚝 떼고 밀어붙이면서 이 영화의 원작이 만화라는 사실을 과시하다시피 한다.
그러나 샘 레이미의 진짜 관심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좀 더 어둡고 고전적인 테마를 끌어들인다. 이 영화의 진정한 싸움은 액션이 아니라 그 모든 등장인물에게 던져진 딜레마에 있다. 그래서 <스파이더 맨 2>는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자신의 내면의 분열 속에서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그들은 모두 상상적인 다른 무엇 되기에 사로 잡혀서 거기서 헤어나올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인간의 꿈을 꾸는 거미인가, 거미의 몸을 빌린 인간인가 혹은 기계의 힘을 빌려 문어의 촉수를 얻은 나는 이상을 이루어야 할 것인가, 이성을 따라야 할 것인가 이 환골탈태의 경계에 서서 벌이는 양자택일의 어려움. <스파이더 맨>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에게 던져진 거미와 인간 사이에서의 선택은 사랑에 대한 포기와 관련이 있다. 그는 자신의 내면이 명령하는 행복과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 사이에서 그것이 왜 하필이면 자기냐고 반문한다. 닥터 옥터퍼스는 파우스트적 비전이라고 할 만한 힘과 능력에 자기의 나약한 육신을 내맡긴 채 꿈을 이루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 둘은 정신적인 스승과 제자이며,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이상적 자아의 자리를 교환하는 거울에 비친 한 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