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인터넷 소설 원작 ‘그놈’이냐 ‘늑대 ’냐
2004-07-16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10대의 달콤한 환상 ‘닮은듯 다른듯’

인터넷 소설 붐의 ‘핵’이었던 동시에 제작 당시부터 10대 네티즌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귀여니 원작의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이하 <그놈>)와 <늑대의 유혹>(이하 <늑대>)이 22일과 23일, 나란히 개봉한다. <그놈>은 만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코미디로, <늑대>는 슬픈 멜로 드라마로 다른 노선을 가면서도 두 영화는 캐릭터와 이야기 흐름에서 쌍둥이처럼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

얼짱이자 싸움짱의 왕자님, 신데렐라를 구원하다

<그놈>의 지은성(송승헌)과 <늑대>의 반해원(조한선)은 다른 이름의 같은 인물이다. 모두 얼짱에 싸움짱이고 자기 이외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도통없는 ‘매너꽝’이다. 그러나 이 ‘싸가지’조차 페로몬으로 작동해 근처 학교 여학생들을 ‘미치게’ 만든다. 두 왕자님은 얼굴도 ‘구린’ 평범한 여학생을 찍는다. 순진녀 한예원(정다빈)과 정한경(이청아)은 다른 여학생들의 질투 아래 자신에게 돌아온 낙점을 묵묵히 수용한다. 여기에 삼각관계(<그놈>의 김한성(이기우), <늑대>의 정태성(강동원))가 끼어든다. 또 여기에 왕자님을 사모하는 불여시 여학생의 방해공작이 끼어든다.

두 영화는 등장인물과 줄거리말고도 흡사한 점이 많다. 홍콩 누아르를 떠올리게 하는 주먹싸움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일당 백의 싸움에서 피흘린 승자를 여주인공이 정성스럽게 보살펴주거나 심지어 ‘찍은’ 여자에게 핸드폰을 던지며 “전화씹으면 죽는다”고 말하는 대사까지 약속이라도 한 듯 겹친다. 많이 본 듯한 이야기, 같은 인물의 끊임없는 자가증식이라는 인터넷 소설의 특징을 두 영화는 그대로 가져온다.

만화적 스타일 대 정통 드라마

두 영화는 같은 말투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색깔은 사뭇 다르다. 이건 코미디와 비극이라는 원작의 차이에도 기인하지만, 영화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다르다. <그놈>은 같은 인터넷 원작의 선배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처럼 만화적 상상력으로 소설에서 폭주하는 이모티콘을 대체한다. 은성이 예원에게 보내는 위협적 문자메시지는 예원의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되고 학교 ‘담치기’를 하는 예원은 아예 공중부양을 한다. 서사 따위는 내 일이 아니라는 듯 에피소드에서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인터넷 소설처럼 영화는 작정한 듯 연출의 일관성을 버리고, 스토리의 비약으로 붕붕 날아다닌다. 경쾌한만큼 산만해 보인다.

이에 비해 <늑대>는 정통 로맨스의 길을 따라간다. <그놈>에서 악세서리처럼 보이던 삼각관계가 이야기의 전면으로 들어서고, 영화는 라이벌인 해원과 태성이 가진 캐릭터의 차이를 강조하는 데 좀 더 초점을 맞춘다. 의리있고 컴플렉스없는 해원에 비해 태성은 힘들었던 과거를 가진 마음 여린 소년이다. 이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시종 눈물만 흘리는 여주인공 한경은 <그놈>의 혜원만큼 눈에 띄지가 않는다. <늑대>는 <그놈>보다 일관성있게 흘러가는 반면 인터넷 소설의 외피로는 어울리지 않게 무거워 보인다.

‘왜’라고 물으신다면, 0_0 혹은 -.,-;;

두 영화를 보면서 개연성 부족을 탓하거나 화면 속의 거침없는 욕이나 음주, 흡연 같은 아이들의 습관을 개탄하는 건 설득력 없는 비판처럼 보인다. 두 왕자님이 ‘열라 구린’ 여학생의 ‘서방’이 되기를 자처하는 이유는 불명확하고 기본적인 자기존중감마저 없어보이는 여주인공의 행동은 어른들이 보기에 전혀 이해가 안될 수 있지만 이는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고 싶어하지 않는 10대들이 가진 환상의 일부분이다. 수능시험을 보다가 단지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약속이 떠올라 시험장을 뛰쳐나가는 여주인공의 행동 역시 역시 공부에 찌들린 10대들이 꿈꾸는 짧은 순간의 달콤한 환상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두 영화는 10대 관객들을 상당수 확보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스크린 팬터지가 20대 이상의 성인관객을 얼마나 설득시킬 수 있을 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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