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총알을 피하던 속도와 열정으로, <인어공주> 스틸사진작가 김장욱
2004-07-16
글 : 김도훈
사진 : 오계옥

1999년.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섬나라 동티모르.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김장욱씨 옆에 있던 기자의 카메라렌즈를 관통했다. 멍하니 서 있는 그 기자를 안전한 장소로 밀어넣은 김장욱씨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뛰기 시작했다. 게릴라들과 정글에서 지내며 지옥의 현장들을 찍어댔던 그는 국제통신사 감마(GAMMA)의 유일한 한국인 사진기자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4년. 필리핀의 세부섬에서 김장욱씨는 직접 구입한 수중용 카메라 장비를 지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빗발치는 총알은 없었다. 대신 하얀 옷을 입고 물길질하는 여배우들만이 가득했다. 이번에는 영화 <인어공주>의 스틸사진작가로서 카메라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언제나 그가 간직했던 꿈이었다. 과감하게 보도사진작가에서 스틸사진작가로 변신을 선언한 이유도 바로 그 ‘꿈’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저의 오랜 꿈은 촬영감독이 되는 거였죠. 영화는 결국 24프레임의 사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거잖아요. 사진의 미장센과도 연관이 있어요.” 보도사진과 영화 스틸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도 자신이 있었다. “둘 다 순발력이 중요하죠. 뉴스사진을 찍을 때는 역동적인 상황의 포인트를 잡는 것이 중요해요. 영화 스틸을 찍을 때도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포착할 것인가를 재빨리 판단하는 게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스틸사진작가로 일한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스탭들에게 동료가 아닌 귀찮은 외부자처럼 받아들여 지는 것만 같아서 고민이었다. “그래서 촬영감독을 비롯한 모든 스탭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가지려고 굉장히 노력했죠. 저의 카메라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 틈을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사진은 개인작업이지만 영화는 공동작업이잖아요. 물론 그게 매력적인 점이지만.” <인어공주>의 주연배우였던 전도연 역시 김장욱씨의 방식을 처음엔 좀 불편해하는 눈치였다. 스틸사진 한장에 그토록 집요한 그가 성가셨기 때문이었을 게다. “컷 사인이 나고도 움직이지 말고 포즈를 취해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했었죠. 귀찮았을 거예요” (웃음) 하지만 나중에 그의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전도연은, 남은 촬영기간 동안 즐겁게 김장욱씨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주었다.

그는 영화의 전·후반 작업을 포함한 모든 제작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스틸사진작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제대로 찍기 위해서는 영화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스틸사진이 아니라 현장기록이라고 부르는 게 옳아요. 영화는 스크린 밖의 이야깃거리들이 풍부하잖아요. 사실 그냥 선전용 스틸사진이 필요하면 필름에서 따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스틸사진은 스탭들이 오랫동안 작업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거죠.” 일에 대한 고집과 열정이 크다보니, 가족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4개월 동안 우도에서 유배생활하면서 <인어공주> 작업을 할 때 아내가 임신 중이었거든요.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했어요.” 그는 약간 쑥스러운 듯 이 말은 실어달라며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털어놓았다. 그 모습에서 그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들을 목격한 종군기자였다는 사실이 대체 겹쳐지질 않는다. 하지만 아내에게 사과할 일이 이번 한번뿐이랴. 당분간은 총알을 피하던 그 속도와 열정 그대로 전국의 촬영현장을 누비고 다닐 태세니까 말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