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러브하우스’ 극장판, <내 남자의 로맨스>
2004-07-28
글 : 황진미 (영화칼럼니스트)

종속을 심화시키는 <내 남자의 로맨스>

질문 하나, <내 남자의 로맨스>는 ‘모든 남자는 예쁜 여자라면 끔뻑 넘어간다’는 명제를 방증함으로써 여자의 미모가 절대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진보적인 영화인가? 질문 둘, 영화는 여자들에게 ‘남자만 바라보지 말고 너 자신이 성장하라’는 교훈을 남기는 건전한 영화인가? 대답은 둘 다 ‘아니오’이다. 첫째, 영화는 ‘여자에게 미모가 절대적’이라는 고정관념을 약화시킨다기보다는 ‘남자는 역시 집이 있어야 청혼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둘째, 영화는 여자들에게 자존(自存)을 위한 성장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청혼받기’를 위한 성장을 촉구한다. 성장(하는 척)해야 남자들이 좋아하며, ‘네가 그토록 원하는 결혼’을 얻을 수 있다 말하는 영화는 결국 ‘여자는 절대로 29살에 남자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강령(?)을 교시한다.

그런데 영화는 더 근본적인 모순을 감추고 있다. 영화는 매우 ‘순진한 판타지’의 외피를 쓰고 있는데, 그것은 ‘미모의 가치’나 ‘스타의 위력’을 평가절하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동산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기 때문이다. ‘수유리 5총사’는 백수처럼 보이지만 엄연한 자영업자들이다. 그들에게 건물이 무상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꿈인 ‘친구들과 한 건물에 모여살기’가 실현되기 어려운 것은 부동산은 비싸고, 자영업은 소자본을 요한다는 자본주의적 공리 때문이다. 지대와 이윤의 법칙을 초월할 수 없기 때문에, 토지나 자본이 없는 이는 임금노동을 하거나, 그 기회도 없으면 백수가 된다. 그들처럼 건물과 소자본을 무상으로 공급받을 수만 있다면, 청년실업 따위를 누가 걱정하겠는가? 그들의 건물 점유를 그저 우연으로 돌린다 해도 영화가 부동산의 교환가치를 무시하고 있다는 혐의는 마지막에 더 잘 드러난다. 남자는 대지가 족히 70평은 되어 보이는 전원주택을 그녀에게 선물한다. 영화는 그가 손수 지었음을 암시하지만, 궁금한 것은 ‘목수의 임금’이 아니라 ‘토지의 가격’이다(“재벌 2세와 열애 중”이라던 스포츠신문의 기사가 사실이었단 말인가?). 그곳에서 그녀는 전업주부로 애를 줄줄이 낳고 행복해한다.

‘러브하우스’가 심화시키는 종속 관계 : 여자⊂남자⊂자본

그녀는 오랫동안 ‘집’을 갖기 원했다. 그녀의 머리 속에서 ‘하우스’와 ‘홈’은 ‘집’이라는 한 단어로 묶여 있다. ‘하우스’는 ‘홈’을 꾸리는 물적 전제이며, 그것은 그녀에게 ‘결혼’과 함께 선물로 주어진다. 물론 그 선물을 받기까지 그녀의 고초도 심했다. 그녀가 집을 얻을 자격이 있는지 ‘연예인이 나타나서’ 사랑과 의지를 시험한다. 그녀는 시험을 이겨내고, 집을 공짜로 받는다. 이제 그녀는 새 집에서 행복할 일만 남았다! 많이 듣던 풍월 아닌가? 지금은 바뀐 것 같지만, <일요일 일요일 밤에> ‘러브하우스’는 신동엽이 진행할 당시엔 신청자가 새 집을 받을 의지가 있는지 시험하는 순서가 있었다. 가령, 아들이 아버지를 업고 계단을 오르는 등의. 청혼을 기다리던 그녀에게 연예인이 스파링 파트너로 등장하여 그녀의 사랑을 시험한다. 그녀는 사랑을 위해 별별 짓을 다한다. 성장하라는 말에 번지점프를 하고, 아침 운동을 하고, 새 직장을 얻는다. 그러나 그녀의 변모는 ‘독립’이 아니라 ‘결혼’에 이바지하며, 그녀의 소원은 오직 결혼을 통해 달성된다. ‘집을 주는 자에게 성의를 시험받고, 공짜로 집을 얻는’ 이 이야기는 영락없는 ‘러브하우스’의 극장판인 셈이다.

이 영화와 그 코너의 유사성은 구도가 아닌 또 다른 심급에서도 발견된다. 첫째, 영화와 마찬가지로 ‘러브하우스’ 역시, 안락한 집이 행복한 가정을 보장한다고 굳게 믿도록 부동산의 사용가치를 물신화하는 반면,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취지가 무색하게도 정작 찌그러진 집조차 자기 소유가 없는 이들을 배제하고, 평균 이상의 고급사양을 덥석 안길 만큼 부동산의 교환가치에는 장님인 척한다. 둘째, 협찬사의 엄청난 간접광고가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영화는 주택 리모델링 산업 대신 대대적인 해충방제산업의 간접광고를 하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2년 전부터 위트있는 게시판 답변으로 입소문이 자자한 ‘세스코’ 마케팅의 영화판 진기명기인 셈이다.

집의 사용가치를 물신화하면서 교환가치는 모른다는 듯한 ‘순진한’ 태도는 자본주의적 관계에서 탈주가 가능할 것 같은 망상을 심어주지만, 사실은 종속을 심화시킨다. ‘행복한 가정’의 등가물(?)인 양 ‘안락한 집’을 갈구하고, 그것을 남자를 통해 얻고자 하는 여자의 욕망은 결국 여자를 남자에 종속시키며, 남자를 자본에 종속시킨다. <내 남자의 로{勞→怒→老}맨스>를 꿈꾸는 당신 덕에 당신의 남자는 일하다 화나서 늙어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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