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 릴레이] ‘귀여니’ 원작 영화 두편, 정성일
2004-08-03
글 : 정성일 (영화평론가)
이모티콘의 간절한 호소 귀 딱막은 어른들의 꽉막힘

귀여니는 우리 시대의 이모티콘(중의 하나)이다. *^^* 물론 이모티콘은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인정하지 않으면 그건 무의미한 것이며, 언어 안에서 그저 비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학교의 문법책은 금지할 것이며, 어른들은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이모티콘은 생겨난 것이다. 이모티콘은 말 그대로 권력이 있는 곳에서 생겨난 (귀여운) 저항이다. 그것은 철자 안에 있는 클로즈업이며, 문장 안에 있는 표정이다. 이모티콘은 방언이 아니라 기호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표준어에게 굽실거릴 필요 없이 자기들의 (사이버) 커뮤니티 안에서 비밀스럽게 약속한 공동체의 암호이다. 그것은 당신이 알고 있는 세계의 바깥, 혹은 당신을 향해서 문 걸어 잠그고 있는 저 방안의 소년·소녀들의 언어이다. 그 세계에서 외로운 귀여니는 친구를 찾아 간청하듯이 글을 쓰고, 또 쓴다. 인터넷 세계 저편의 소년·소녀들은 그걸 읽고 또 읽으면서 친구의 리플을 단다. (혹은 비분강개해서 안티 사이트를 만들고 격렬하게 비난한다.) 우리는 그걸 하나의 세계로 인정해야 한다. 거기 그렇게 하나의 가능 세계가 자기의 기호를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대화하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고등학교라는 세계의 기호를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언제나처럼 여기에 어른들이 끼어들 때 생기는 것이다. 그들은 창조된 세계를 훔쳐서 돈을 벌고 싶어하고, 그 성공을 이용해서 다시 한번 유행을 만들려고 한다. 베스트셀러의 논리가 귀여니를 사이버세계로부터 오프라인으로 끌어내고, 다시 성공의 재생산이라는 잉여가치의 환골탈태는 대중영화의 이름으로 톱 스타들과 수많은 스태프와 엄청난 홍보비를 동원해서 영화관에 간판을 내건다. 그러나 우리는 오해하면 안 된다. 귀여니는 버지니아 울프가 아니며, 거트루드 스타인이 아니며, 실비아 플라스가 아니며, (물론) 요시모토 바나나가 아니다. 귀여니는 그냥 열일곱 살(<그 놈은 멋있었다>), 혹은 열여덟 살(<늑대의 유혹>) 소녀 이윤세(귀여니의 본명)이다. 거기에 있는 환상은 온통 금지로 둘러싸인 소년·소녀들의 황폐한 세상 속에서 꿈꾸는 그저 불가능한 제스처일 뿐이다. 넘쳐나는 트라우마의 위협과 무시무시한 실재의 탐욕 사이에서 그것은 그들이 자신을 방어하면서 세상을 긍정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귀여니의 이모티콘은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기호이자, 자기를 대신하는 하나의 존재이며, 그것은 하나의 영혼이다. 우리는 그 슬픈 존재를, 외로운 영혼을, 독립된 기호를 껴안아야 한다. 그 기호가 뿜어내는 존재의 영혼에서 우리 시대 소년·소녀들의 소통에 대한 간절한 호소를 배워야 한다. 이모티콘은 우리에게 증후의 배움이다. 이걸 잊으면 안 된다. 내가 영화로 만들어진 <그 놈은 멋있었다>와 <늑대의 유혹>을 보면서 비참해지는 것은 그것이 정말 한심할 정도로 못 만든 (새로운 장르!) ‘목불인견(目不忍見)’ 영화였기 때문이 아니다. 차라리 그런 건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어른들이 열일곱, 혹은 열여덟 살 소녀가 쓴 소설을 읽으면서 만든 두 편의 영화 독후감에서 우리 시대 소년·소녀의 세계, 그 세계의 슬픔을 견디기 위해 환상을 통해서라도 억지로 버텨보려는 안간힘을 이해하려는 그 어떤 노력도 볼 수 없을 때 거기서 나는 우리 시대 대중문화의 미숙한 유치찬란함과 자본의 흡혈귀와도 같은 허기진 욕망을 동시에 본다. 비참함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소녀의 환상을 영화로 옮기면서 그 가녀린 이야기가 어른들의 마초 액션 판타지로 다시 각색될 때 거기서 확인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의 공존의 가능성에 대한 전멸, 혹은 서로 다른 세대 사이의 사랑의 몰락, 그리고 서로의 기호에 대한 긍정의 가능성의 문맹이다.

우리는 왜 소년·소녀들에게 가르치려고만 하고 그들로부터 배우는 일에 서투른 것일까 이모티콘은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배움과 이해의 기호(이며 증후)이다. 혹은 사랑의 기호이다. 우리가 그것을 배울 때, 그만큼 우리는 서로 다가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배우려 하지 않는 동안 귀여니와 그의 친구들은 실타래처럼 서로를 이어가면서 천일야화처럼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끝도 없이 계속 쓸 것이다. 더 많은 이모티콘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기호들이 생겨나서, 결국에는 당신과 완전히 다른 언어를 갖고 더욱 문을 꽁꽁 걸어 잠글 것이다. 나는 귀여니의 팬클럽이다. 귀여니가 행복해질 때까지 나는 탈퇴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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