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장화, 홍련> <스캔들>의 영화음악감독 이병우 [1]
2004-08-04
글 :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이병우. 이병우, 2004년 현재 그를 가장 쉽게 소개할 수 있는 직함은 영화음악 감독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영화음악으로 상하이국제영화제에서 음악상을,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영화·드라마 음악상’을 받았다. 뒤늦게 당도한 <장화, 홍련> 사운드트랙 음반은 한국과 일본에서 7월23일 동시에 발표된다.

사실 이병우는 영화음악가이기 이전에 ‘멀티 기타 플레이어’로 통한다. 지난해 발표한 연주 앨범 5집 <흡수>(2003)는 8년 만의 신보이자 몇년 동안 클래식 기타를 조련한 결과물이었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살펴보자.

꿈을 따라갔던 멀티-기타리스트

1984년 만난 이병우는 조동익과 더불어 1980년대 후반 한국 대중음악의 새 지평을 연 당사자들이다. <우리노래전시회 1>의 ‘너무 아쉬워하지 마’, <들국화 1집>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시작으로, 어떤날 이름으로는 단 두장의 앨범(1986, 1989)을 발표했지만 그(들)의 한국 대중음악사적 의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박하면서도 세밀한 기타, 절제된 신시사이저 음향, 속살거리는 여린 보컬을 통해, 지친 일상을 섬세히 반추하거나 소소한 감정을 따뜻하게 호출하며 꿈과 그리움을 그려낸 시화(詩畵) 그 자체였으므로.

세션 연주 부문에서도 이병우는, 조동익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청량제 역할을 했다. 그는 들국화, 시인과 촌장과 같은, 한국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음반과도 인연을 맺었다. 김민기의 노래극 <아빠 얼굴 예쁘네요>(1987)나, 조동진의 음반들(1집과 2집의 재녹음반 등)에 후광을 드리우기도 했고, 14년 만에 한국 음악계로 회귀한 한대수의 <무한대>(1989)에서 베이시스트 송홍섭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으며, 한영애의 4집(1995)에서 작곡에도 참여, 색다른 느낌의 한영애의 음반을 주조하기도 했다. <양희은 1991>의 프로듀서로서 <그해 겨울>처럼 고등학교 시절 작곡된 곡을 포함,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처럼 고즈넉한 서정이 물씬 풍기는 음악들을 분만했다. 조동익의 솔로 음반 <동경>(1994)에 참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병우가 열한살 때 잡은 기타는 팻 매스니, 제프 벡 등으로부터 자양분을 얻으며 이병우와 분리불가능한 화신으로 낙점되었다. 솔로 연주 앨범은 꾸준히 이어졌다. 1집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航海>(1989)를 비롯해, 빈 유학 시절 <혼자 갖는 茶 시간을 위하여>(1990), <생각 없는 생각>(1993), <이병우 기타 IV>(1995)까지. 포크, 뉴에이지, 퓨전 재즈의 감수성이 녹아든 연주 앨범들은 한폭의 수채화처럼 여백이 있는, 그러나 꼼꼼하고 아기자기한 기타의 시정으로 잔잔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시선은 바다 건너로도 펼쳐져, 장장 1989년부터 2000년까지 한번도 모자라 두곳(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 클래식 기타과, 미국의 피바디 음악원)을 유학했다. 연주 음악에 길다면 길 공백도 있었지만 이는 새로운 잉태를 위한 것이었다. 5집 <흡수>에서 일렉트릭 베이스 기법(슬래핑, 속칭 초퍼 기법)을 통해, 정적(靜的)인 클래식 기타줄 위에 동적(動的)이고 다채로운 음의 향연을 펼쳤다. 뿐인가. 음반에 그의 인생도 담으려 했다.

또 다른 여행, 영화음악 이야기

F i l m

o g r a p h y

<세 친구>(1996)

<그들만의 세상>(1996)

<스물넷>(2001)

<마리 이야기>(2001)

<쓰리>중 <메모리즈>(2002)

<장화, 홍련>(2003)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

대중음악 아티스트로서 영화음악을 만드는 일은 그에게 또 다른 새로운 영토로의 여행이었다. 그의 첫 영화음악 작품은 임순례 감독의 <세 친구>(1996)이다. 사실 이병우의 기타는 딱 세번 들을 수 있었지만, 고정된 카메라 속에 지루한 일상이 중첩되는 정적 미장센과 절제된 사운드의 조련이 돋보였다. 임종재 감독의 <그들만의 세상>(1996)이나 <스물넷>(2001)도 그의 손길이 닿은 작품. 하지만 이 작품들의 음악 분량은 얼마 되지 않았다. 따라서 영화음악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본격적으로 발휘된 것은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2001)부터일 것이다. 여기에서 이병우의 리리시즘이 영화의 분위기와 행복한 조화를 이룬다.

그의 영화음악으로의 외유(?)는 최근 들어 더욱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다국적 프로젝트 옴니버스영화 <쓰리>(2002)의 첫 번째 작품인 <메모리즈>에서 영화와 밀착적인 간결한 사운드를 디자인하더니, <장화, 홍련>(2003)은 좀더 진일보해, ‘아트호러’ 영화와 맞닿는 고급스러운 사운드트랙을 선보였다. 그리고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병우를 연주인으로서, 영화음악 작곡가로서의 감성을 한껏 상승시킨 작품은 한국 사극 및 전통 악기와 유럽의 음악(바로크 후기 음악)이 만나 새로운 화학작용을 일으킨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영화음악이 아닐까.

대중음악인으로서 영화음악인의 대열에 오른 뮤지션으로 이병우의 디스코그래피는 여러모로 주목할 만하다. 그의 음악 둥지 ‘무직도르프’(‘음악이 있는 마을, www.musikdorf.com’)에서 발표되는 지음(知音)과의 연주음악 음반들 역시 꾸준한 여정에 있다. 일관되면서도 조금씩 새로움과 변화를 보여주는, 그리고 내밀한 시어들을 내장한, 서정적인 빛깔의 음악들… 그의 후일담이 기대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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