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파리] 더빙은 영화에 대한 모독인가?
2004-08-09
글 : 차민철 (파리 통신원)
더빙 잘하는 나라 프랑스도 더빙에 부정적 견해 많아

프랑스에서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면 영화 제목과 시간 밑에 약어로 표기된 몇 글자가 눈에 띈다. 눈 여겨 살펴보면 ‘VOST’ 또는 ‘VF’라고 적혀 있는 이 약자들은 영화가 원어로 불어 자막과 함께(VOST) 상영되는지 아니면 불어로 더빙이 되어(VF: 이 경우에는 원어가 불어로 된 경우와 외국어를 불어로 더빙한 경우를 공히 포함한다) 상영되는지를 표시해준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극장에서 원어를 불어 자막과 함께 상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간대에 따라 불어로 더빙된 필름을 상영하는 극장들도 있다. 텔레비전의 경우, <아르테>와 같은 특정 채널의 특정 시간대를 제외하고 외국영화는 대부분 불어로 더빙되어 방영된다.

더빙은 불어로 ‘두블라주’(Le doublage)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더빙이라는 뜻과 함께 연극이나 영화에 있어서 등장인물의 대역을 의미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외국영화를 불어로 더빙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1930년대 초부터이며, 1947년에는 외국영화의 경우 프라스어로 더빙을 할 것을 의무화하는 법률이 제정되기도 한다. 이는 불어와 프랑스 문화를 보호하려는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더빙이 프랑스 영화산업에 끼치는 경제적인 효과를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이후 프랑스는 더빙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프랑스에서 더빙의 가장 성공적인 경우로 예를 드는 것은 루이 말의 연기 지도를 받고 미셸 뒤쇼소이가 말론 브랜도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영화 <대부>(사진)이다. 현재 프랑스에는 40여개에 달하는 더빙 전문 회사가 있으며, 약 600명에 달하는 더빙 전문 배우들이 있다.

무성영화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사운드가 영화에 등장한 이래로 영화는 이미지와 소리의 예술이 되었다. “한편의 영화가 전세계에 배급될 때, 자막과 함께 상영되면 그 영화는 본래의 힘의 15%를 잃는 반면, 잘 처리된 더빙과 함께 상영된다면 10%의 힘만을 잃는다”(앨프리드 히치콕). “더빙은 영화에 있어서 오욕이다”(장 르누아르). 이 두 인용구는 영화에 있어서 더빙에 대한 대립적인 견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더빙에 대한 인식은 세대에 따라(프랑스의 경우 연령층이 높아질수록 더빙을 선호한다), 또 매체나 영화의 성격에 따라(텔레비전이나 외국 시트콤 또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더빙을 많이 하고 있다) 다르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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