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약골 소년이 수련 끝에 경기에서 우승하고 사랑도 얻는 캘리포니아 청춘영화 줄거리와 비슷하게 들리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세 번째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5년 뒤에 만들어진 <키즈 리턴>과 달리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다. 시게루는 젊은 날의 경험을 발판삼아 장차 괜찮은 어른이 되어보겠다는 ‘아이’가 아니라, 여름이 가기 전에 바다와 싸워 존재의 존엄성을 확인해야만 하는 고독하고 엄격한 인간이다. 서핑에 임하는 시게루의 태도는 폼나서, 몰려다니는 게 즐거워서 파도를 타는 다른 젊은이들의 그것과 너무나 다르다. 그는 ‘죽도록’ 진지하다.
서핑이 이야기 구조에서 차지하는 절대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 여름 조용한 바다>는 파도를 가로지르는 장면보다 해변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장면이 월등히 많은, 사상 최고로 정적인 서핑영화다(심지어 시게루는 대망의 콘테스트에 나갔다가 주최쪽의 호명을 듣지 못해 그냥 돌아오기도 한다). 또한 <그 여름 조용한 바다>는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치고 사상 최고로 담담한 드라마다. 기타노 다케시는 이 영화에서 이미 센티멘털리즘을 역병이나 되는 듯 두려워하고 있다. 시게루와 다카코의 애정과 실망, 화해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그들의 침묵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 핸디캡이 아니라 성격의 일부로 보일 지경이다(둘은 수화조차 거의 쓰지 않는다).
내내 정면만 응시하던 영화는 시게루가 퇴장한 다음에야 비로소 과거를 돌아본다. 낙화처럼 흩날리는 조각난 플래시백 틈에는, 그때까지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시게루와 다카코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 드문드문 드러난다. 그 이미지들은 과묵한 주인공들이 미처 말하지 않은 이야기의 둔중한 부피가 되어 가슴을 친다. 보이지 않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한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히사이시 조가 반주한 기타노의 첫 번째 작품이며 기타노가 직접 편집한 첫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