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을 감상으로 바꿔버린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바다 사이트, 작가 귀여니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자. <그놈은 멋있었다>에 관리자는 다음과 같은 소개말을 두고 있다. 어른이라면 멀찌감치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10대의 세계에 깊숙하게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 들 것이며 , 10대는 자신들의 언어로 구사되는 자신들의 판타지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고. ...^0^ 판타지!!!!!!!!!!!
<그놈은 멋있었다>와 <늑대의 유혹>에서 동원되었다고 말해지는 판타지의 핵심은 매우 평범한 소녀가 대단히 잘난 소년들의 유혹을 받는 것이다. <그놈은 멋있었다>에서 한예원(정다빈)은 지은성(송승헌)의 유혹을 받는다. 그리고 <늑대의 유혹>에서 정한경(이청아)은 반해원(조한성)과 정태성(강동원) 둘로부터 적극적 구애를 받는다. 이 두 영화 모두 다소 불가능해 보이는 이러한 유혹의 시나리오를 가능케 만들기 위해 필사적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우연과 필연의 변주로 분주하고 시끌벅적한 서사 공간을 채우는 것은 한편으로는 휴대폰과 이모티콘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패싸움과 같은 10대 문화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출생과 성장의 비밀에 얽힌 가족 로맨스다.
소년들의 외상과 유혹의 환타지
그러나 잠깐, 판타지와 백일몽은 다르다.
아름다운 소년으로부터 사랑받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하는 보통 소녀는 백일몽을 꾼다. 이 백일몽에서 그녀는 상대가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을 짜기 시작한다. 그 소년의 곁을 맴도는 다른 아름다운 소녀가 도저히 제공할 수 없는 것을 찾는다. 그것은 피로 맺어진 관계 혹은 유사 혈연관계 속의 한 위치를 점하는 것이다. <늑대의 유혹>에서 정한경은 정태성의 이른바 배다른 누이로 밝혀지며, <그놈은 멋있었다>에서 한예원은 지은성의 마누라 그리고 부재한 어머니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모든 잠재적 경쟁자들을 따돌린다. 다시 말하자면 미소년의 사랑을 얻기 위해 보통 소녀는 매우 낡았지만 여전히 심금을 울리는 멜로드라마의 어떤 관행 속에서 자신의 백일몽을 진행시킨다. 피할 수 없는 천륜의 상황을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적 연령으론 10대지만 사랑의 기술이 치환된 소녀의 허구화 기술은 파파노파의 그것이다. 파파노파의 픽션을 10대 문화의 그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귀여니의 그야말로 귀여운 10대 하위문화 장치들이다.
각각 101화(<그놈은 멋있었다>), 120화(<늑대의 유혹>)로 이루어진 인터넷 시리즈 연재물이라는 형식, 이모티콘 겁 없이 무제한 사용하기, 유머라기보다는 일종의 익살 만발(쏘사 쏘사 맙쏘사 등), 간략한 대화체, 발랄한 의성어(벨레레레 벨레레레레-도시의 전화벨 소리)가 노파의 얼굴 위에 놓인 발칙한 가면 위의 장식들이다. 그래서 사실 소녀는 낡은 외투를 입은 채 백일몽을 꾸고 있고, 두편의 영화에서 외상이 만들어내는 판타지극의 주인공은 미소년들이다. 정신분석학의 초창기부터 판타지는 주관심의 대상이었다. 프로이트는 판타지는 외상(트라우마) 그리고 성애와 배열을 이루는 심리적 현실이다. 성의 형성과 판타지 그리고 증후는 인과 관계를 갖고 있다. 판타지가 백일몽과 다른 것은, 백일몽은 처음부터 허구로 소개되는 반면 판타지는 분석의 결과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증후의 배후로 밝혀지는 잠재된 내용이다. 외상적 기억의 상징에서 증후는 판타지들의 무대가 된다(“판타지와 성애의 기원들”, 장 라플랑쉬 외). 정태성 역을 맡은 강동원의 외상은 불륜에서 비롯된 자신의 출생에서 비롯된다. 지은성 역의 맡은 송승헌의 외상은 유년 시절, 아버지가 에이즈로 사망함으로써(소설에서는 참을 수 없는 여자관계가 빚어낸 병으로 설명), ‘소문’이라는 미시권력에 의해 주변으로부터 왕따를 받는다. 에이즈 간접 감염 공포 때문에 아이들이 자신과의 접촉을 기피하는 것을 경험한, 10대 후반의 지은성이 특히 혐오하는 것은 육체적 접촉이다. <그놈은 멋있었다>는 멜로드라마적 순간에 “그놈”의 외상을 전면적으로 확대시키고, 또 영화의 마지막에 다시 결정적으로 이 외상을 불러와 그 치유를 시도한다. 영화의 결절 부분들은 다 그놈의 외상과 관련이 있는 에피소드로 점철된다. 처음 지은성과 한예원이 상고 대 도일여고의 리플 사건으로 쫓고 쫓기는 에피소드, 한예원이 학교 담을 넘어 도망치다가 ‘그놈’의 입술에 정면으로 입술을 부딪히는 장면, ‘내 입술에 입술 비빈 뇬은 니가 첨이었어. 책임져(원문 이모티콘 생락)’라는 데서부터, 입원한 지은성에게 한예원이 보내는 모성적 애정, 그리고 유치원에서의 생일 파티, 모든 아이들이 지은성에게 다가가는 것을 피하고 있을 때 한예원만이 예외적으로 다정하던 장면의 회상 등. 영화는 제목처럼 결정적으로 상처받은 그놈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예컨대 영화는 소녀적 백일몽에서 출발해, 소년의 외상과 판타지를 멜로드라마적으로 구성하고, 액션영화의 관행을 도입해 소년들의 그린 듯한 미모와 움직이는 육체를 숭배하게 한다. 소녀가 어머니의 자리로 걸어들어가 외상을 치유해주면서, 그리고 동년배인 소녀의 위치에서 그놈을 숭배하면서 소년은 완벽해진다. 그놈은 미모뿐만 아니라 심리적 정상성을 회복한다. ‘그놈은 멋있다.’ 이때 물론 소녀의 백일몽은 그런 소년을 자신이 단독으로 소유하는 것이다.
방금 상경했을 뿐만 아니라 남자친구를 친구에게 잃어버려 멍멍한 상태의 정한경(이청아)에게 버스에서 실내화를 던진 뒤 스스로를 정한경의 남자친구로 소개하게 되는 반해원(조한성)은 별다른 외상이 없는 청소년이다. 반면, 유년 시절 자신의 신원을 숨긴 채 아버지의 식구들, 이복누나 정한경을 만난 적이 있고 그것을 기억하는 정태성은 유혹과 외상과 판타지의 연쇄적 시나리오를 체화하게 된다. 그러나 이 외상과 판타지는 몇개의 안전핀을 꼽고 있다. 우선 스타 이미지다. 외상과 상처는 꽃미남의 외양, 그 표면에서 내릴 곳을 찾지 못하고 미끄러지거나, 그 아름다움에 약간의 우수와 비애를 덧칠하는 브러시가 된다. 그리곤 외상은 감상이 된다. 폐부를 찌르는 성찰적 상처 그리고 성장통이 되는 대신 말이다. 10대 대중을 소구하는 소설과 영화적 재현에서 또 이 상처받은 아이는 또 멀리 호주로 떠난 다음 이윽고 저 세상으로 사라진다. 정한경은 바람둥이 반해원의 바람을 잠재운 뒤 함께 살게 된다. 매우 현실적인 선택이고 불행 중의 해피엔딩이다. 근친상간적 모티브는 순애보로 치환되고, 그 순애보는 보통 소녀와 미소년의 만남의 거름으로 쓰인다.
안전하게 성장통 치러내기. 외상을 감상으로 바꾸기. 익살로 난국 타개하기. 보통 소녀의 백일몽으로 미소년의 판타지를 그려내기 등 <늑대의 유혹>과 <그놈은 멋있었다>는 소녀 작가에 의해 쓰였으나, 소녀의 삶에 대한 전복적 시선은 없다. 그 시선은 패싸움을 하는 소년들의 빠른 몸놀림에 보내진다. 이렇게 소녀들은 반항적인 소년들에게 시선을 위탁하지만 사실 그 소년들 역시 삶의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수행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소설이 영화로 옮겨오면서, 영화의 짜릿한 액션장면들은 더욱더 소년들을 영화의 주인공 자리로 옮겨놓는다.
처음 시작했던 소개말에 다시 기대자면, 나도 두편의 소설들과 영화로 10대 세계에 깊숙이 들여놓을 수 있기를 바랐건만, 문지방 너머 펼쳐지는 공간이 그리 깊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문지방을 놓는 일, 건너는 일이 그리 쉬운가? 10대에 의한 10대들을 위한 소설이 청소년기에서 성년으로 횡단하는 새로운 문지방을 놓기를 바랄밖에.........! “그 십대는 멋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