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탐험 미스테리 스릴러, <남극일기> 뉴질랜드 촬영현장
2004-08-13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 정진환
“미치지 않곤 벗어날 수 없는 하얀 공포에 빠지다”

같은 뉴질랜드의 설원이지만 <반지의 제왕>과는 느낌이 달랐다. 반지원정대가 넘어갔던 설산의 험한 봉우리와 계곡엔 괴물과 요정과 신화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송강호·유지태 주연에 임필성 감독 진용의 <남극일기> 촬영이 진행중인 뉴질랜드 남섬 스노우팜 일대의 설원은 이렇다할 표정이 없었다. 눈밭이 적당한 높낮이의 굴곡으로 끝없이 펼쳐진 이 곳은 색만 하얀 사막같다. 거기엔 낭만이 없다. 괴물도 살지 못할 것같은 오지의 느낌, 거기서 <남극일기> 팀이 주목한 건 낭만조차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감이었다.

지난 9일 스노우팜을 찾았을 때, <남극일기> 팀은 남극탐험 대원들이 서로 다투다가 그중 한명이 크레바스(빙판 속으로 깊게 뚫린 구멍)에 빠지기 직전까지의 장면을 찍고 있었다. 남극 탐험 경험을 가지고 이 영화에 스탭으로 참여한 탐험가 박영서에 따르면 이 곳의 풍경은 남극과 흡사하다. 영하 40~50도의 남극보다는 훨씬 덜 춥지만 기후가 시시각각 변하고 눈바람이 세게 불면 사방이 하얗게 변하는 화이트아웃 현상이 수시로 발생한다.

남극 대륙 해안에서 가장 멀고, 세계에서 가장 추워 ‘도달불능점’이라고 불리는 곳을 향해 ‘무보급 정복’의 기록을 세우고자 6명의 탐험대원이 나섰다. 탐험 도중 1920년대에 이곳을 찾은 영국 탐험대원의 시체와 함께 그의 일기장이 발견된다. 거기엔 당시 대원들을 그린 그림들이 예언처럼 들어있고 대원들은 불길한 기운에 휩싸인다. 화이트 아웃이 대원의 넋을 빼앗아 길을 잃게 만들고, 크레바스는 스스로 움직이는 듯 대원들의 발길 앞으로 다가선다. 대원들의 운명은 끔찍한 일기장의 그림을 자꾸만 닮아간다.

단편 <소년기> <베이비>로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이 영화로 장편 데뷔하는 임필성(34) 감독은 <남극일기>를 ‘미스테리 스릴러’라고 불렀다. 그에 따르면 이 영화에서 남극은 “배경이 아니라 캐릭터”이다. “인간과 자연이 대결하는 구도 속에서 살아있는 생물처럼 남극의 소리와 표정을 담아내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반지의 제왕>의 뉴질랜드 특수효과팀이 참여하고 <공각기동대> <링>의 가와이 겐지가 음악을 맡았다.

“남극은 배경이 아니라 캐릭터”자기 의지로 미쳐가는 탐험대장 송강호

남극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이 미스테리 드라마의 중심축은 송강호가 맡은 대장 최도형이라는 캐릭터이다. 그는 대원들을 자꾸만 사지로 몰아간다. 실종된 대원을 버리면서 목표지점으로 간다. 그 스스로 남극이 주는 공포에 미쳐가는 것같지만, 어떨 땐 이 모든 파국을 예상하고 의도한 것같다. 미치기를 실천해 가는 인간, 달리 말하면 자기를 사로잡고 있는 공포가 미치지 않고서는 벗어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것임을 알고 있는 인간이랄까.

작가주의와 상업영화의 결합

송강호의 말. “최도형이 왜 미쳐가는지 해답이 시나리오에 있다면 그걸 영화로 만들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나도 어떤 캐릭터인지 영화를 다 찍고 나 봐야 알 것같다.” 또 한명의 주인공 유지태는 “영화에 작가주의적 요소가 많은데 그게 상업영화와 어떻게 결합할지 궁금해” 이 영화의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총제작비 85억~90억원에 이르는 <남극일기>가 의도하는 건 고급스런 블록버스터이다. 그 고급스런 점 때문에 2001년에 첫 시나리오가 나온 이 영화는 영화사 봄에서 미로비전을 거쳐 3년만에 싸이더스에서 크랭크인하게 됐다. 현재 40% 촬영이 진행됐으며 9월초부터 국내 세트 촬영과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거쳐 내년 봄에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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