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거꾸로 보는 한국영화
2004-08-13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우 형사는 존 우(오우삼)에 대한 오마주로 보인다.” 4년 전 뉴욕에서 열린 어느 영화제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소개됐을 때 뉴욕의 한 신문에 실린 영화평엔 이런 말이 들어 있었다. 아마 이명세 감독의 전작을 봤다면 이런 말을 못했겠지만, 이 서구인의 눈에 오우삼과 이명세는 아시아의 액션감독이라는 한 묶음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당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상영 직후 이명세 감독이 뉴요커들과 나눈 관객과의 대화도 기억이 난다. 그 무렵 뉴욕에선 경찰의 폭력문제가 큰 이슈였다. 그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형사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기겁을 했다. 뉴욕의 한 시민이 물었다. “한국에선 정말 경찰이 범죄혐의자를 그런 식으로 다루나요?” 그때 오래전 홍콩의 어느 경찰관에게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그는 “홍콩누아르를 보면 홍콩은 아무 데서나 총질을 해대는 도시로 보이지만, 사실 홍콩이 아시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타자에 대한 오해나 무지는 영화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국영화를 받아들이는 외국인의 관점은 그런 면에서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타자의 시각을 무시할 수 있을까? 한국영화가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작을 낸 이즈음에?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4년 전과 달리 확실히 한국영화는 지금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상당히 잘 팔리는 상품이 됐다. 변화를 실감케 하는 건 이젠 해외 여러 나라에서 한국영화 전문가를 자처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주, <씨네21> 외신기자클럽 코너를 맡고 있는 3명의 필자를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등 외국의 영화평론가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 가운데 몇명은 마치 한국의 영화 전문기자처럼 한국영화를 보러 다닌다. 한국에 자주 올 수 없는 평론가인 경우엔 한번 와서 하루에 7∼8편을 보고 가기도 한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은 아예 개봉 첫날 서울 개봉관을 찾는 일이 많다. 한류 붐에 힘입어 어떤 영화가 흥행하는지까지 파악하려 함이다.

이런 일을 두고 한국영화가 이만큼 컸어요, 하며 대견해하는 일은 그만두자. 외국인이 관심을 갖는 게 낯선 일이긴 하지만 그건 오늘날 영화를 생산하는 어떤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우리가 한국영화가 국제적 주목을 끌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만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영화제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아니다. 스포츠경기야 불가피하게 결과에 집중하겠지만 영화는 그럴 수 없다. 정작 궁금해야 할 것은 결과보다 과정이다. <올드보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떻게 질문하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영화가 얼마나 성장했는가? 이런 물음엔 답이 없다. <친구>의 유오성처럼 “마이 컸네”라고 말하는 수밖에. 질문을 바꿔보자. 세계 영화계에서 지금 한국영화는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한국영화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이번호 특집기사인 ‘세계가 본 한국영화’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극소수의 영화들이지만 외국에서 주목받은 최근작들에 대한 그들의 리뷰는 한국영화를 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그들의 리뷰를 옮긴다고, 그들 입맛에 맞는 영화를 만들자는 얘기는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대화다. 그리고 대화는 상대와 내가 같은 곳을 바라봐야 가능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가 미국에서, 프랑스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사실 정도에 그치는 한 대화는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가 본 것과 그들이 본 것을 비교하며 감동과 재미와 실망을 함께 나눌 때, 우리는 비로소 한국영화가 어디쯤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대화야말로 <씨네21>이 담당할 중요한 몫 가운데 하나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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