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알모도바르의 비틀린 필름누아르, 해외신작 <나쁜 교육>
2004-08-19
글 : 김도훈

1960년대의 스페인, 가톨릭 기숙학교를 다니는 열두 살의 이그나시오와 엔리케는 우정 이상의 감정을 교류하는 사이다. 그러나 이그나시오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그를 성적으로 착취하던 기숙학교장 마놀로 신부는 엔리케를 학교에서 쫓아내버린다. 20여년이 지난 1980년대의 스페인. 엔리케는 영화감독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엔리케는 영화배우가 된 이그나시오의 방문을 받는다. 여전히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이그나시오는 ‘방문’이라는 자작 시나리오를 엔리케에게 전해주고, 엔리케는 그 시나리오가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 매혹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엔리케는 지금의 이그나시오가 사실은 자신이 알고 있던 이그나시오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혹에 빠져든다.

<나쁜 교육>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자전적인 영화다. 그 역시 소년 시절에 가톨릭 기숙학교를 다녔고 “기숙학교에 다닐 무렵 이미 종교나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며 종교와 신에 대한 반골정신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알모도바르는 자전적 이야기를 아련한 노스탤지어로 치환해내지는 않는다. 전반부까지 <나쁜 교육>은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나 <그녀에게>처럼 감동적인 멜로드라마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반이 지나면서 알모도바르는 도발적인 정서적 반전을 관객에게 갑자기 던져준다. 그와 함께 영화는 그의 초기작인 <마타도르>를 연상시키는, 급작스럽게 어둡고 기괴한 필름누아르의 세계로 극적인 전환을 이루는데, 60년대와 80년대라는 시간이 교차하는 동시에 ‘영화 속 영화’와 ‘현실’이 혼란스럽게 뒤섞인다. 색채는 알모도바르의 초기작들처럼 강렬하고 캐릭터들에서 선의와 악의를 구분하는 것도 모호하다.

<나쁜 교육>이 개막작으로 올해 칸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 서구 언론들은 일제히 “알모도바르가 초기작들의 어두운 세계로 돌아왔다”고 평가했다. 칸영화제 기간 동안 발행되는 <필름 프랑세(Film francais) 데일리>에 실린 별점 평가에서는 참여한 12개 프랑스 매체가 모두 별 4개의 만점을 주기도 했다. 프랑스, 스페인,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는 알모도바르의 영화 중 가장 뛰어난 개봉 성적을 올리기도 했는데, 이는 가톨릭 사제의 성추행 사건들과 맞물려 커다란 사회적 이슈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9월17일이면 그 모든 센세이션의 중심에 서 있었던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누아르-치정극이 우리에게도 강렬한 여진을 던져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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