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밤 불량배들에게 여주인공 치히로는 윤간을 당한다. 그녀가 고향을 떠나 도쿄로 와서 직장생활을 한 지도 5년이 흘렀다. 남자친구인 노가미와 결혼을 앞둔 치히로. 출근을 서두르던 아침, 5년 전 그녀에게 악몽을 선사했던 강간범 히로가와가 그녀를 찾아온다. 그는 말한다. 나머지 일당인 고지마와 바바도 곧 도착할 것이라고. 이후 스토리는 한때 비디오 대여점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B급 성인영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와 유사하게 흘러간다. 5년 전 악몽을 선사한 악당들을 치히로가 차례로 해치워간다. 달라진 조건은 <프리즈미>의 경우 친절하게도 악당들이 가정방문을 온다는 점이다. 유디트처럼 치히로는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적들의 목을 벤다.
<프리즈미>는 공포영화의 장르성보다는 콤팩트하게 만들어진 V시네마(비디오시네마)를 연상시킨다. 냉장고에 시체를 얼리거나 그로 인해 네크로필리아로 빠져드는 설정은 적은 예산으로 강력하고 인상적인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V시네마의 기본 전략과 일치한다. 공간과 캐릭터의 최소화, 복수에 집중하는 내러티브, 선명하게 구분되는 대립구도가 지속된다. 불필요한 정사신과 샤워장면으로 남성관객의 눈요기로만 그려지는 여주인공 치히로, 차례대로 피범벅이 되어 죽어가는 남성캐릭터는 ‘폭력과 섹스에 의한 즐거움’을 지상과제로 삼는 V시네마의 전형성에 그대로 맞아들어간다. 야쿠자영화 <고닌>과 <검은 천사>로 널리 알려진 이시이 다카시의 연출도 일관되게 ‘타임킬링’에 집중한다. 그러한 값싸고 강력한 장치는 대부분 진부한 섹스와 폭력에 의존하게 마련이다. 연일 쏟아지는 뉴스만으로도 ‘엽기’는 충분하다. 좀더 정교한 장르영화가 그리운 늦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