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신파조 재회 이야기, <돈텔파파>
2004-08-31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미혼모, 미혼부의 신파조 재회 이야기. 그리고 이들의 들러리로 나선 개그의 행렬

여고 화장실이 시끌벅적하다. 여고생 애란(채민서)이 옷을 풀어헤치고 용을 쓴다. 그의 친구 순미(이영자)가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이윽고 애란의 몸을 빠져나온 아기가 학교 유리창을 부수고 튀어나와 아톰처럼 하늘로 둥실 날아오른다. 물론 CG다. 조악한 장면이지만 꽤 공격적인 서두다. 여고생이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아버렸다는 ‘소녀괴담’을 어떠한 비난의 느낌도 담지 않고 재현해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당찬 여고생은 갓난아기를 퀵서비스로 아빠에게 배달시킨다. 역시 고교생인 아빠 철수(정웅인)는 수업 중에 난데없이 아기 바구니를 받아들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처하다. 흥미로운 상상력이다. 그런데 이 짧은 순간까지다. 퀵서비스 아저씨(조형기)의 일장 훈시부터 불길했다. 수업하던 교사의 입을 닥치게 한 그가 철수의 무책임한 연애 행각에 대해 혼구멍을 낸다. 이제부터 상상력은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높이로 갑자기 추락하고, 욕설과 폭력으로 누군가를 깔아뭉개야 웃길 수 있다는 가학적 믿음의 세계가 가속도를 더하고, 미워도 다시 한번 내 아이를 돌아보고 말겠다는 신파 버전이 맥락없이 이어진다. 아빠보다 의젓한 소년으로 커버린 초원(유승호)을 둘러싼 젊은 아빠, 엄마의 갈등과 선택은 이상하다. 아이를 아빠에게 무작정 맡겨버리고 유학갔다가 란제리 회사의 이사로 돌아온 애란이 아들을 보고 싶어하는 건 굳이 시비걸 일이 아니겠으나, 철수가 ‘훌륭한’ 엄마를 외면하며 왜 그렇게 괴로워해야 하는지, 왜 깡패들에게 죽기 일보 직전까지 끔찍하게 얻어맞아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철수와 애란은 증발했던 애정을 어디서 갑자기 끌어내 장밋빛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을까.

마케팅 방편이긴 하나 영화사의 ‘웰메이드 영화 포기 선언’은 상대적으로 정직했다. 그런데 오르가슴 무비의 섹스코미디라고? 속옷 모델들을 전시하고 그들을 창녀 취급하면 말초신경을 자극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건 극기 시험대에 오른 듯한 공포스런 순간들이다. 미스터리도 준비됐다. 임호는 트랜스젠더 보리수로 변신해 알쏭달쏭한 에피소드를 줄줄이 이어가고, 이응경은 자못 우아한 표정으로 온갖 험한 욕설을 입에 붙이고 산다. 김지영, 정보석 등 연기파도 코미디언 김미화도 모두들 개그 연기에 혼신을 다한다. 이들의 가열찬 변신을 불러온 힘이 무엇이었을지 미스터리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내놨던 기획시대가 이 영화를 제작했다는 사실이 진정 미스터리하고 공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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