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영국이 보는 한국영화,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폰>
2004-09-01
글 : 이지연 (런던 통신원)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폰>의 개봉 후 영국 비평 공개

몇주 전, <씨네21> 464호 특집 ‘세계가 보는 한국영화’에 영국 평단과 언론의 목소리는 담아내지 못했다. 이렇다 할 개봉작이 없었기 때문. 그런데 8월 들어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8월13일) <폰>(8월27일) 등이 줄줄이 개봉하면서, <사이트 앤드 사운드> <가디언> <타임 아웃> 등 유력 매체에 이들 작품의 비평이 실렸다. 그들의 다양한 시각을 여기 공개한다.

<언컷>(Uncut) 2004년 9월호 데이비드 콕스

<살인의 추억>

봉준호는 이 미스터리를 어둡고 절박한 감정과 섞어놓는다. 그는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모든 질문이 다 답해지는 결론을 향해 갈 때 우리가 느끼는 평범한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 관객은 그 어둠 속을 형사들과 함께 헤매며 따라갈 수밖에 없다. 살인범이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관망한 채 앉아 있으려 해도, 영화의 종말은 숨이 막히고 폐부를 찌른다. 영화는 뛰어나게 잘 짜여져서 흥미진진한 스릴러이면서도 느슨한 구석도 갖고 있어서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웃기고 감동적이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 세심한 디테일과 넘치는 개성, 이 영화는 올해 최고의 범죄영화라 할 수 있다.

<타임 아웃> 2004년 8월 11~18일 No.1773 제프 앤드루

이 어둡고 웃기고 감동적인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실제로는 지적이고 의도도 좋은 형사들이 행사하는 잔인함이, 그 당시 아직도 군사독재 정권하에 있었던 국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봉준호 감독이 서스펜스 만점의 미스터리로 우리를 끌어들이고도 장르적인 규칙에 따라서 플레이하기를 거부한다는 데 있다. 그는 장르적 규칙보다는 살인 때문에 사람들이 겪게 되는 고통, 수사가 진행될수록 쌓여가는 절망과 혼돈, 그리고 우리가 믿고 싶은 것보다 강물은 더 혼탁하다- 증거와 윤리라는 면에서- 는 것을 강조한다.

<가디안> 2004년 8월13일 금요일 피터 브래드쇼

한국에서 온 이 기이한 스릴러영화는 그 나라에서 실제로 가장 악명 높았던 연쇄살인사건에 기초하고 있다. 작은 지역 도시에서 1986년에서 1991년 사이 10명의 여자를 살해한 이 사이코 범죄자는, 그뒤 살인을 멈추었고 결국은 잡히지 않았다. (중략) 봉준호의 영화에는 몇개의 멋진 장면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기자와 구경꾼이 뒤섞인 혼잡한 군중에 의해서 범죄현장이 무지막지하게 망가지는 장면이다.

<가디안> 2004년 8월13일 금요일 피터 브래드쇼

이번주 두 번째 한국영화는 김지운의 악몽 같은 공포영화다. 이 영화는 새로운 종처럼 출현한 일본의 무서운 영화들- <링> <주온> <검은 물 밑에서>- 의 스타일을 취하고 있다. 이 영화는 조금 과욕이 엿보이고, 마지막 반전은 선명함과 충격이 부족하다.

<이브닝 스탠더드> 2004년 8월12일 목요일 윌 셀프

<장화, 홍련>

<캐리>나 <엑소시스트> 그리고 폴란스키 영화에서 보듯이 공포영화를 만드는 남자감독들의 심리세계에 생리하는 소녀만큼 더 사악하고 불길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 문제에 대해 더이상 유럽 중심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김지운의 영화가 충분히 잘 보여주듯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실제로 어떤 보편성이 있는 것 같다. 그가 여성의 생리학에 대한 자신의 남성적인 불안감을 더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해도 틀리지는 않겠지만, 원래 이야기(전래 동화)에 주인공들의 히스테리가 잠재적으로라도 나타나 있음에 틀림없다. (중략) 그 집 자체가 이 정상성을 흉내내는 팬터마임에서 하나의 훌륭한 스타 플레이어 역할을 해낸다. 그 집은 깔끔한 중산층의 효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뭔가 말할 수 없는 끔찍함을 품고 있다. 이모개의 카메라는 이 비극적인 세팅을 잘 잡아낸다. 카메라는 줌인하거나 아웃하지 않고 공간을 베어버린다. 트래킹하지 않고 찔러버린다. 연기는 모두 훌륭하지만, 그중에서도 공격적인 언니 임수정과 사악한 새엄마로서의 염정아의 연기는 빼어나다. 임수정은 동양의 위노나 라이더 같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무언가 깨우친, 그러나 아직은 균형이 덜 잡힌 십대의 모습을 연기한다. <장화, 홍련>의 플롯상의 반전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쌓여가는 최면적인 공포 분위기다. 사실, 누가 진짜 미쳤고, 누가 더 사악한가는 궁극적으로는 중요하지 않다. 단 한번의 심장이 멈출 듯한 사실의 폭로 대신에 김지운은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는 순간들을 제공한다. 보는 사람의 배가 뒤집혀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곤 하는 순간들 말이다. <장화, 홍련>은 이미 <링>처럼 할리우드에 리메이크 판권이 팔렸다. 그러나 과연 감독의 두드러진 한국적 표현과 느낌들이 글로벌한 화폐 단위로 교환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사이트 앤드 사운드> 2004년 9월호 Vol.14 킴 뉴먼

<폰>

잘못 걸린 전화는 공포의 수단으로 자주 이용돼왔다. 휴대폰의 상용화는 서스펜스영화 시나리오 쓰기를 더 힘들게 해왔다(‘전화를 걸어서 도움을 청하면 되잖아’ 하는 불만들). 그러나 이 영화는 휴대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불길한 상황들을 생각하게 한다. 휴대폰에 미쳐 있는 아시아 문화에 대해 일정 정도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거기서는 귀신들린 전화를 받는 사람들에게 어느 누구도 휴대폰을 없애버리면 된다고 충고할 것을 생각지 못하는 것 같다. <폰>은 기억에 오래 남을 끔찍한 순간들을 만들어내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면에서는 부족한 듯하다. 요즘 아시아 귀신영화들은 서로 비슷한 것들이 겹치고 반복되면서 나름대로 무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폰>은 따로 보면 나쁜 편은 아니지만, 무리 중 하나로서라면 그저 그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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