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소설(과 영화들)을 사랑하는 이라면 <시크릿 윈도우>를 보는 내내 전작의 흔적들을 비밀스럽게 만끽하며 즐거운 상상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가 고요한 호숫가의 표면을 훑다가 창문을 통해 외딴 오두막집으로 넘어들어가 쓰다만 문장이 깜빡거리고 있는 노트북 화면으로, 그리고 거울로 다가가 소파에서 자고 있는 작가 모트 레이니를 보여주는 긴 오프닝 시퀀스를 보라. 그리고 레이니의 예전 소설 <시크릿 윈도우>가 자신의 소설을 표절한 것이라며 주장하는 낯선 사내가 등장하는 초반 사건들은, 빙고, <미저리>와 <샤이닝>을 어김없이 연상시킨다. 그러니까 <시크릿 윈도우>는 아내에게 버림받은 뒤 의욕을 상실한 작가가 창작에 관한 강박증에 시달리는 상태, 그리하여 외딴 곳에 갇혀 뜻하지 않게 점점 미쳐가면서 자신이 이제까지 문자로 상상해왔던 공포의 소우주를 ‘제대로 완성시키려는’ 과정을 다루는 영화인 것이다. 게다가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푸르른 옥수수들에 이르면 <옥수수밭의 아이들>까지 목록에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대부분을 레이니의 독백으로 채워넣는 <시크릿 윈도우>는 분열된 자아의 양극을 손쉽게 즐기듯 오가는 조니 뎁의 헐렁한 연기를 맘껏 누리게 해준다. 일상을 지나치게 논리정연하게 혹은 선량하게만 영위하는 이들을 등 뒤에서 비웃어대는 조니 뎁의 시니컬한 제스처는 그야말로 (<샤이닝>의 잭 니콜슨에 이어) 스티븐 킹의 페르소나처럼 보일 지경이다. 낯선 사내 존 슈터가 레이니의 문 앞에 덩그러니 두고 가는 모자를 떠올려보라. 동그랗고 검은 그 모자는 마치 푸코와 마그리트의 파이프처럼, ‘이것은 모자가 아니다’라고 장난을 치는 것만 같다. 그것은 가면놀이로 스스로를 위장하는 모트 레이니-조니 뎁의 카니발리즘의 표적이며, 혹은 거울을 비롯한 각종 반사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미쳐 날뛰는 그의 측은한 광기의 은유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