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호텔 비너스> 배우 초난강의 남다른 한국사랑
2004-09-20
글 : 김영희 (한겨레 기자)
“각코 이이, 한국이 너무 좋다”

<호텔 비너스>는 솔직히 당혹스럽다. 모든 배우들이 한국어 대사를 하는 일본영화라는 점, 무엇보다 무엇을 위해 저들은 (힘들게) 한국어를 하고 있나라는 의문 때문이다. 어쨌든 이건 초난강(구사나기 쓰요시·30)을 만나야 풀릴 일이었다. 그 없이는 생각도 하기 어려웠을 초유의 시도니까. 최근 몇년간 영화 <환생>, 드라마 <나와 그녀와 그녀의 살아가는 길> 등을 통해 일본에선 단순히 인기그룹 스맙(SMAP)의 멤버가 아니라 진지하고 따뜻함을 지닌 ‘배우’로 확실히 자기 이미지를 구축한 초난강의 한국 사랑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후지TV>가 2001년 시작한 심야 정보다큐멘터리 <초난강>(NHK의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빼놓고 일본 지상파에서 한국어로 진행된 첫 프로그램!)은 애초 6개월 방영예정이었지만 3년 반 넘게 이어지고 있다. 볼터치에 촌스러운 의상의 초난강이 2002년 한국어 음반을 발매하고 한국 텔레비전에 코믹한 모습으로 출연한 것도 이 프로그램의 ‘기획’이지만, 재일동포, 병역문제 등 ‘연예오락’을 뛰어넘는 주제들도 꾸준히 등장시켰다. 11월 방영될 <후지TV>의 특집드라마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에서 초난강은 온갖 차별 속에서 바이올린 제작자로 성공한 실존 재일동포 진창현 역을 맡는다.

이쯤되면 심술궂은 궁금증이 든다. 한국을 좋아한다고? 도대체 어디가 얼마나 좋다는 거지? 한국어 실력은 얼마나 될까? 지난 9월2일 저녁, <스맙×스맙>의 연 이틀 녹화를 막 끝낸 그를 도쿄드라마센터에서 만났다. <호텔 비너스>의 한국 개봉을 앞두고 “조금 긴장돼요, 그리고 영광입니다”라던 그는 이내 <씨네21>을 보고 “와, 송강호다, 유지태다… 대단한 배우들이에요”라고 반색했다. 대답의 7할 이상이 일본어였지만, 인터뷰도 한국어 학습인 양 그는 가끔씩 한국어 표현을 되물어가며 혼자 몇번씩 되뇌었다.

<호텔 비너스>를 기획한 배경은 무엇이었나. 처음부터 대규모 개봉(일본에선 최종 150개관 상영, 9억엔의 수입을 올리는 성공을 거뒀다)을 생각했나.

<초난강>을 시작하면서 우리끼리 비디오영화라도 한편 만들고 끝내자고 다짐했던 게 시작이다. 이번엔 ‘처음’인 게 많다. 한국어 대사에 일본어 자막(일본 개봉 당시)이 깔리는 일본영화라는 점부터, 감독도 각본도 영화는 처음이다. 보통이라면 상식이나 고정관념을 따를 텐데 전부 처음인 사람들이 모여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에서 출발했던 게 좋았던 것 같다.

촬영과정에서 무리는 없었나. 블라디보스토크의 촬영은 단 열흘이었다고 들었다.

역시 배우들은 다르더라. 나는 한국어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나카타니 미키를 비롯해 모두 해내는 거다. 거꾸로 내가 초조해질 정도였다. 외국어로 연기하는 건 배우에게 불리한 부분 아닌가. 하지만 그런 것에 상관하지 않고 뭔가 재미있는 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일치감 같은 게 현장에 넘쳤다. 낮에는 촬영, 밤에는 탭댄스 연습으로 열흘을 보냈다.

일본어였다면 보는 이들이 훨씬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설정이 한국과 전혀 상관없다는 점도 보는 이들에겐 당혹스러울 것 같고, 인물의 성격이나 관계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물론 완벽한 (한국어) 발음은 안 된다. 하지만 오히려 이국적인 설정, 거기에서 해볼 의욕이 생겼다. 시간도 공간도 알 수 없는 무국적의 상황에서 모두 ‘한국어’라는 하나의 키를 갖고 소통하는 것을 통해 여러 가지 의미를 ‘발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일본어로 하면 그저 보통영화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할까. 한국에서 어떻게 볼지 긴장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아닌가. 좀 실패하면 ‘난 몰라’ 하지, 뭐. (웃음)

초난강에게 한국의 모든 것은 “각코 이이”(멋있다) 한마디로 통한다. 배우도, 한글도, 지저분한 뒷골목조차 그에겐 “각코 이이”다. 타인의 눈을 통해 나를 보는 건 흥미로운 경험이다. “각코 이이”를 연발하며 가볍게 흥분까지 하는 초난강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지겨워하고 눈살 찌푸렸던 일상적인 시간과 공간도 새롭게 느껴진다.

<초난강> 프로그램의 당신과 실제 초난강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한국인들이 있다.

사실 <쉬리>를 통해 한석규를 알고 한국영화와 음악을 좋아하게 됐지만, 프로그램 처음엔 한국어를 못했다. 지금은 조금 하지만. 또 깊은 역사인식 같은 것도 없었다. 무지했다고 해야 할까. 물론 프로그램을 하며 공부를 하게 됐지만, 오히려 일반적인 상식이나 선입견 같은 게 없어 눈에 보이는 그대로 한국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지금의 한류 붐에 대해 느낌이 각별할 것 같다.

정말 <초난강>을 시작할 땐 지금과 같은 붐은 상상도 못했다. 그저 나는 내가 좋아하는 한국, 그러니까 개인의 ‘취미’로 프로그램을 할 수 있어 무척 신나했다. 나 혼자 속으로 ‘자식들… 한국영화랑 한국어가 얼마나 멋있는데… 너희는 모르지?’ 이러면서 말이다. 한류는 사실 때늦은 감이 있다. 물론 일시적인 붐으로 끝날 수도 있다. 거기서 흥미를 잃는 사람도 있다면, 그것도 그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정말 한국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도 있는 거고. 모두 자신의 취향대로 선택하는 거다.

한국에 가면 뭐가 좋나.

전부 다. 한국에 딱 내리면 내 얼굴색이 달라진다고들 한다. ‘마늘파워’인가? 인천공항에서 내리면 한적한 한강변을 따라 차가 북적대는 도심으로 들어가게 되지 않나. 내겐 한국인의 조용하면서도 정열적인 두 가지 이미지와 자연스레 연결된다. 묵는 호텔 앞에 단골 식당이 있는데 이른 시간 아침식사를 하러 가면 식당주인이 우리와 같이 밥을 먹는다. 일본에선 손님 앞에선 밥 먹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 그것도 멋있다. (웃음)

웬만한 한국영화는 다 본다고 들었다. 처음 한국을 좋아하게 된 계기도 영화였고. 어떤 점에 끌렸나.

한국 배우들에겐 일본 배우와는 좀 다른 매력을 느꼈다. 내면적인 강함이 번져나오는 듯한 느낌. 나도 한국어로 발음해보고 싶다, 공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배우들은 내 안에 있던 에너지, 혼 같은 걸 흔들어놓는 것 같다. 물론 어떨 땐 한국영화에서 좀더 감정을 억눌렀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 그건 연기를 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폭발적인 상황이더라도 내면의 강함이나 분노나 슬픔을 억누르며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가 있지 않나. 하여튼 한국영화는 ‘볼티지’가 높다. 일본인 안엔 숨겨져 있는 부분이고. 같이 일해보고 싶은 감독을 꼽으라면… 강제규 감독인데, 너무 유명해졌다.

배역을 고를 때 자신의 잣대는.

가리지는 않는데 원래 관객에게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사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고집하는 족족 실패하는 타입이다. 중학교 축제 때 내가 주장한 기획이 대실패였다. “누가 하자 했어? 초난이지?” 이런 식이다. 주어진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나한테 맞는 방식인 것 같다. 배역도 대부분 주변의 의견으로 정한다. 그런 점에서 <초난강>은 예외다.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 했는데 성공한 유일한 사례다. (웃음)

<호텔 비너스>엔 상대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서툴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타인에게 말을 거는 정성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 정도로 하니 내 애정을 알아줘”라는 떼쓰기가 아니다. 누가 알아줄 것도 아닌데 한국차를 타고 다니는 이 일본 스타는 “언젠가 꼭 서울에서 살아보고 싶다”며 “연예인을 그만둬도 한국과의 교류는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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