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베를린] <올드보이>가 <킬 빌>보다 한수 위!
2004-10-04
글 : 진화영 (베를린 통신원)
독일에서 개봉한 <올드보이>, 한국영화의 힘을 증명하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올 9월 독일에서 개봉하면서 현지 평론계와 언론은 물론, 관객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박 감독이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올 칸영화제가 끝난 지 벌써 5달. 그러나 심사위원장 쿠엔틴 타란티노가 박 감독을 편애하며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아닌 <올드보이>에 황금종려상을 안겨야 한다고 꽤나 고집을 부렸다는 소문이 사그라지지 않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로 <올드보이>와 <킬 빌>이 매우 닮은꼴이라는 주장이 제시되곤 했다. 그러나 이제 <올드보이>를 만난 독일 관객은 박 감독을 더이상 한국의 타란티노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박 감독이 타란티노보다 한수도 한참 한수 위인 만큼 타란티노를 미국의 박찬욱이라 불러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킬 빌>과 <올드보이>는 모두 감금에서 출발해 복수로 치닫는 만큼 언뜻 닮은꼴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우마 서먼의 사정은 훨씬 나으니, 감금연수가 4년과 15년이라는 산수적 차이 외에도 복수의 대상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오대수는 무력하고 비극적이다.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준 인물의 정체도, 그 동기도 전혀 짐작할 수 없다.

독일 3대 전국지 중 하나인 <벨트>는 타란티노가 갈등을 쿨하게 배열하는 데 그치는 만큼 그 갈등의 근원을 파악하기는 여반장이나, 박 감독이 제시하는 갈등의 속내는 파악이 되지 않음을 두 감독의 차이점 중 하나로 분석한다. 그리고 타란티노 작품의 잔인성이 칼로 벤 몸에서 뿜어나오는 피를 통해 시각적, 즉각적으로 표현된다면, 박 감독이 파악하는 세상의 잔인함은 주인공 오대수가 씹어먹는 산낙지의 끔찍함으로 은유되는데, 이는 비디오 대여점에서의 독학과 대학에서의 철학 전공의 차이가 아닐까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뭐니뭐니해도 <올드보이>가 독일 관객을 사로잡은 힘은 한 작품 안에 여러 가지 주제들이 잔뜩 섞여 있으면서도, 그런 복잡함이 전혀 버겁게 다가오지 않는 탁월한 연출에 있다. 그리고 일단 복수가 주제인 것처럼 보여지다가 자책으로, 인간성의 왜곡에 대한 얘기로 발전되는가 싶더니 종국에는 자의적인 삶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인간 갈등의 스펙트럼을 폭넓게 커버하고 있음에 경탄해 마지않는다. 게다가 매 순간 다른 장르로 넘어가는 변이의 과정이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점도 놀랍다는 평가다. 파라노이아적 스릴러에서 피범벅 액션으로, 물샘을 자극하는 멜로에서 그리스 비극으로 치닫는 극적 변이들이 물흐르듯 넘어가다니 이보다 더 끈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독일은 TV 수상기나 자동차산업 정도에서나 한국을 쉽지 않은 경쟁자로 간주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올드보이> 개봉을 통해 한국영화 또한 만만치 않은 경쟁상대로 부상했음을 인정한다. 독일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그리고 가장 빠른 발전을 보여주고 있는 한국영화의 저력이 <올드보이>처럼 상업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면서도 영화제에서 주요 상을 거머쥘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탁월함에 있다고 평가하면서, 더 늦기 전에 한국영화를 주목, 그리고 주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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