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평범한 모범생의 야심찬 성공담,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
2004-10-06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아찔한 그녀’ 덕분에 소심한 아이에서 세 마리 토끼(돈, 대학, 사랑) 모두를 잡은 ‘남자’가 되다.

지극히 모범적인 남자 고등학생을 일탈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가장 쉬운 방법은? 미모의 여성을 등장시켜 그동안 억압된 성욕을, 혹은 성에 대한 호기심을 마구 자극하기.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를 비롯한 할리우드 청춘물이 즐겨 다루는 소재다. 성에 대한 이미지는 여기저기 널려 있으나 정작 아무것도 ‘경험’해보지 못한, 말로만 ‘섹스’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는 여기에서 한발 나아가 유치한 성적 욕망과 낭만적 사랑을 결합시키며 섹스코미디의 상상력에 로맨스의 진정성을 부여하려고 시도한다. 게다가 거기에는 포르노 배우와 포르노 사업이 단순히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중요한, 심지어 교육적인 비중을 차지한다는 ‘신선함(?)’도 있다.

모범생 매튜(에밀 허시)는 명문대학교의 입학 허가를 받아놓고 장학금을 타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졸업을 앞둔 동료 학생들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그에게 일탈이란 순간의 몽상에 불과하다. 그러던 어느 날, 매튜 앞에 매혹적인 여인, 다니엘(엘리샤 쿠스버트)이 나타난다. 매튜는 도발적인 그녀에게 한순간 빠져들면서 점점 모범생의 탈을 벗고 대담해진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다니엘이 포르노 배우였음을 알게 되자 매튜의 청춘사업뿐만 아니라 대학 진학 계획까지 뒤죽박죽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 매튜와 다니엘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구상한 포르노 사업에 위험을 무릅쓰고 운명을 걸기로 한다.

영화의 시작은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들의 일상적 단면을 <러브 액츄얼리>의 첫 공항장면에서처럼 느린 화면으로 따스하게 보여주는 데 주력하지만, 이후 영화의 움직임은 매우 역동적이다. 매튜의 일탈에 대한 욕망은 다니엘에 대한 성적 호기심으로, 나아가 호기심은 역경을 뚫는 로맨스로, 게다가 로맨스는 새로운 개념의 포르노 사업으로 이어지고 완성된다. 말하자면 영화는 평범하고 소심한 모범생의 졸업에 대한 단상에서 시작하여 명예, 부, 사랑 모두를 차지하는 야심찬 성공담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나름대로 다채롭고 코믹한 에피소드들과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로 채워지며 심각함과 진부함 사이에서 적절히 가벼운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가벼운 코미디물이라고 하더라도 부록처럼 난데없이 등장하는 동양 문화와 여자 포르노 배우들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묘사는 편견과 몰이해로 가득 찬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재현 방식에서 단 한치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씁쓸함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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