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성숙한 영혼을 지닌 꼬마요정, <맨 온 파이어>의 다코타 패닝
2004-10-07
글 : 김현정 (객원기자)

<반지의 제왕>의 작가 J. R. R. 톨킨이 다코타 패닝을 보았더라면 꼬마 요정이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소설 속에서 창조했던 요정은 청년의 용모를 가지고 있지만, 불멸의 존재인 탓에 수천년 넘게 쌓인 세월 또한 현명한 눈길 속에 담고 있다. 다코타 패닝은 그 조그만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은 아이가 정신적으로는 자신과 동갑인 아버지를 걱정할 때, 혹은 육중한 중년 남자의 슬픔을 알아볼 때, 공들인 구체관절인형처럼 크고 투명한 눈동자는 그 홍채 너머 깊은 마음을 실어낸다. <업타운 걸>에 함께 출연한 브리트니 머피가 표현했듯 다코타 패닝은 “나이를 넘어서는, 성숙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 마치 내 친구 같지만 분명히 아홉살 꼬마답게 귀엽기도 한” 이상한 소녀다.

정신지체자인 아버지와 아버지 때문에 조숙해야 했던 딸의 이야기인 <아이 엠 샘>으로 나이 어린 스타가 된 다코타 패닝은 그보다 더 어릴 때부터 원하는 게 분명했다. 그녀는 두살 때부터 발레를 배웠지만, “그저 재미있어서 일과 끝나고 하는 일”에 불과했고, 뭉친 담요를 옷자락 밑에 집어넣어 임신부 연기를 해보이는 걸 더 좋아했다. 네살 어린 여동생을 딸 삼아서 하던 소꿉놀이가 그녀에겐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 “난 항상 배우가 되고 싶었다. 집 근처에서 노는 대신 TV나 영화에 출연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다코타 패닝이 그 첫 번째 행운에 발을 디딘 건 세제 광고에 출연하면서부터였다. 평범한 부모 밑에서 자란 다코타 패닝은 연극수업을 받으면서 민감한 재능을 키웠고, 그 재능의 촉수 끝은 단발 광고를 넘어 할리우드로 뻗어갔다. 이 아이에겐 에이전시가 필요하다는 주변 사람들 권유에 밀려 6주를 기약하고 할리우드로 떠났던 다코타 엄마는 그 약속이 열달에서 삼년으로 길어지고, 딸이 사인을 해주는 유명인사로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이 엠 샘>의 숀 펜, <더 캣>의 마이크 마이어스, <맨 온 파이어>의 덴젤 워싱턴. 놀라운 스승들과 연기를 하면서 다코타 패닝은 신체적인 성장 속도를 넘어 마구 자라났다.

이목구비가 좀더 자란 다코타 패닝을 볼 수 있는 <맨 온 파이어>는 살인으로 얼룩진 기억을 가진 전직 비밀요원 크리시가 어린 소녀 피타의 경호를 맡고, 피타를 납치한 범인들에게 복수하는 스릴러다. 곰인형을 안고 잠드는 꼬마 피타는 다이어리에 “사랑해요, 크리시 베어”라고 수없이 적어넣는다. 이것을 그저 아버지와 딸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도기 인형의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열살 소녀 다코타 패닝은 조금만 더 어렸으면 의심할 것 없고, 조금만 더 세속적이었으면 의심을 샀을 이 관계를, 모호한 성과 속의 혼합으로 밀어넣었다. “<아이 엠 샘>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이 어떤가를 묻는 영화예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한 영화”라고 지혜롭게 말하는 다코타 패닝은 오랫동안 영혼으로 떠돌다가 한 여자의 뱃속에 정착하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나이와는 상관없는 영토에서 살고 있는 소녀다. “사람들이 내 진지한 영화를 봐주길” 소망하는 다코타 패닝의 다음 영화는 어머니가 자살한 뒤에 상상 속의 친구와 대화하는 <하이드 앤 식>. 이 영화에서 위대한 스승이라 할 만한 배우 로버트 드 니로를 만났을 다코타 패닝은 그 에너지와 재능과 영혼을 남김없이 흡수했을지도 모른다. 외계인과 뒤섞인 아주 특별한 혈통을 지닌 <테이큰>의 앨리처럼, 다코타 패닝을 보면 그 탄생 이전조차 보고 싶어진다.

사진제공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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