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봉준호 감독, 풍문 속의 신작 <괴물>의 정체를 밝히다
2004-10-08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과연 한강에 떨어진 괴물은 어떤 모습일까?

부산영화제 PPP 참석차 온 봉준호 감독이 난무하던 소문을 잠재우며 신작의 실체를 드러냈다. 그동안 가제 <더 리버>로 알려져 있던 제목은 드디어 <괴물>로 확정됐다. "제목만 바뀌었고, 처음 시놉시스 그대로다. 단지 그 전에는 괴물의 존재에 대해서 밝힐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끔찍한 재난이 벌어지는 도시형 재난영화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정확히 제목도 <괴물>로 한 거다". 이 영화의 영문제목을 듣는다면 좀 더 확실히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The Host'. "게스트의 반대말 호스트가 아니라 (웃음), 숙주라는 뜻의 호스트다." 바이러스로 인해 변종된 돌연변이 괴물이 한강에 출몰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이다. 한강 둔치에 위치한 매점. 아버지와 좀 모자라는 아들이 그곳의 주인이다. 웬만하면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거기에 괴물이 나타나 가족을 해치고, 이때부터 이들 매점 부자는 "국가나 사회가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원시적이고 조악한 장비로 괴물과 사투를 벌이게 된다"는 내용이다.

사실, <괴물>을 둘러싸고 떠돌던 억측들을 봉준호 감독도 잘 알고 있다. 가령, "초대형 괴수영화"라는 예상과 엄청난 거대예산의 "재난 블럭버스터"가 될 것이라는 오해들. 거기에 대해서 그는 잘라 말한다. "한국에서 괴물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 쉽게 생기는 몇 가지 억측들이다. 특히 영화의 스타일과 관련해서는 경찰, 군대, 생물학자 등이 나온다고 생각하고, 서울이 쑥대밭이 되고, 불바다가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거다." 하지만, 그는 "괴물의 기원 및 배경과 관련해서는 미국 5,60년대 괴물영화처럼 정치적 맥락이 있기도 하다. 그 부분을 재미있게 만들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한다. 서울 도심 한복판, 그것도 서민들의 일일 휴양지인 한강에서의 위험천만한 대결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가 대한민국 현재의 어느 모퉁이와 밀접하게 닿아 있음을 예감하게 한다.

"괴물영화라고 하면 SF영화나 판타지 장르를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한국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바랬고, 괴생명체가 등장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현실적이다. 오히려 펼치기보다 제한되고 집중된 형태의 영화를 생각하고 있다. 내년에 데모 클립 비슷하게 하나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아마도 그걸 보여주면 사람들이 금방 감을 잡을 것 같다. 공간적으로는 한강, 인물적으로는 한 가족에게 집중되어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내 머릿속에는 오히려 리얼리즘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리얼리즘은 한마디로 "한국적인 재앙"으로 축약할 수 있다. 그것이 이 영화의 특색을 만들어 낸 모티브라고 예상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멀쩡하던 대교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전철에서 생화장을 당한다. 우리의 현실이 더 초현실적인 거다. 실제로 그런 재앙을 겪으면서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들 말이다. 이 영화는 길을 가다 멈춰서서 한국사회를 비판하자는 게 아니다. 한강에서 갑자기 괴물이 나와서 날뛰고 하는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슬프면서도 부조리한 리얼리즘처럼 느껴진다." 전작 <살인의 추억>에서 특정한 시대의 배경과 인물의 캐릭터가 등을 맞대고 있다면, 이번 영화 <괴물>에서는 괴물영화라는 오래된 장르적 성격과 한국 사회의 일상화된 재앙이 동석할 것으로 보인다.

봉준호 감독이 보여준 스틸 사진 석장은 <괴물>을 상상하기에 충분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강철교에 매달려 있는 괴물의 모습(이 이미지는 영화에서 중요한 모멘트이기 때문에 지금은 공식적으로 공개할 수 없다고 찢어갈 정도였다), 저 멀리 성수대교 너머로 보이는 희뿌연 서울의 도심, 그리고 축 늘어진 사람을 입에 물고 한강철교 밑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괴물. 얼핏 그 괴물은 초식공룡처럼 보이기도 하고, 네스호의 네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난 1년간 시나리오 쓰면서 계속 찍어온 사진들에 우리 미술팀이 실사처럼 괴물을 그려넣은 비주얼이다. 이런 그림이 수백, 수천장은 있다. 아직 괴물의 디자인이 확정된 건 아니다. 보다시피 이 영화에서의 괴물은 판타지나 SF에 나오는 괴물이 아니라, 천지에 산다는 괴물이나, 네스호에 산다는 네시같은 거다. 만화적인 캐릭터는 피하고 싶었다. 실제 존재하는 동물에서 더 많이 아이디어를 가져온다. 이건 작년 12월쯤 나왔던 그림이고, 핵심 모델 중 하나지만, 사실 많이 변했고, 내년 1,2월이 넘어야 최종 모델이 결정될 것 같다"고 한다.

괴물이 완성되면 <괴물>은 다시 한번 변이할 것이다. "대외적으로 배우들에게 나눠 줄 시나리오"는 아직 다듬고 있는 중이지만, "연출부들에게 주는 업무용 버전"은 이미 완성된 상태다. 이달 말이나 다음주 초에 완전히 끝날 것이라고 한다. 크랭크 인은 내년 4월 예정이고, 2005년 말이나 2006년 초에 개봉할 듯 하다. 우리들의 일상에 침입한 괴물과 그를 물리치려는 사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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