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귀여워>의 김수현 감독
2004-10-15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 이혜정
“꿈꾸는 대안 혼돈속에서 찾을 것”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10월7~15일)는 신인감독의 경쟁 부문인 뉴커런츠 섹션에 세 명의 한국 감독을 초청했다. <귀여워>의 김수현, <여자, 정혜>의 이윤기, <마이 제너레이션>의 노동석, 셋의 영화는 모두 반응이 좋다. 이가운데 둘을 인터뷰했다. 김수현과 노동석은 젊은 세대의 절망과 무기력감을 안고서 세상과 싸울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절반 이상이 철거된 폐허 같은 황학동 아파트에 희한한 가족이 산다. 아버지 장수로(장선우)는 점을 봐준다면서 여자들을 꼬시는 사이비 도사로, 배다른 아들 둘과 함께 산다. 첫째아들(김석훈)은 퀵서비스 배달원이고 둘째(선우)는 레커차를 몬다. 둘째가 아버지에게 여자 하나 붙여주겠다며, 차도에서 강냉이를 파는 순이(예지원)를 집에 데리고 온다. 순이는 장수로와 바로 ‘말을 까면서’ 친해지는데 첫째가 질투를 한다. 그 와중에 철거 대상 지역의 주민을 내쫓고 돈을 받는 깡패인 셋째아들(정재영)까지 집을 찾아와 순이와 얽힌다.

철거촌 콩가루 가족 ‘한여자 쟁탈전’“연기 초보 장선우 감독 역시 저력이”

대책 없어 보이는 아버지와 아들들이 한 여자를 놓고 다투는 이 콩가루 집안 이야기는 무척 웃기면서도 혼란스럽다. 인물들의 관계가 정교하게 얽히지만 영화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꿈이 제각기 다른 길을 가도록 흩어 놓는다. 영화 속 황학동은 인물들이 저마다의 열기를 발산하는 축제의 공간 같다. 거친 듯하면서 잘 다듬어진,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어법이다. “혼란스러운 게 좋은 것 같다. 내가 꿈꾸는 대안을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말고는 길이 없는 것 아닐까.” 김수현(36) 감독은 아닌 게 아니라 에미르 쿠스트리차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 역시 혼돈을 즐기는 사람 같다. 카니발의 힘을 알고 있는 있는 것 같다. 그 힘을 배우고 싶다.”

그는 장선우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다. 〈꽃잎〉을 찍고 난 뒤 세칭 ‘불량 청소년’들을 다룬 단편을 준비하던 도중에 고등학생 배우 중 한 명이 본드를 마시고 죽는 일이 생겨 그만두고 퀵서비스 배달을 했다. 그러곤 레커차도 몰았다.(그 후 그의 단편은 장선우 감독에게 넘겨져 장편 〈나쁜 영화〉가 됐고, 여기서도 그는 조감독을 했다.) 그때의 경험으로 김 감독은 ‘길 위의 인생’을 다룬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대학 시절 빈민활동 경험을 떠올려 철거촌을 배경으로 보탰다. “처음엔 철거촌이라는 상황에서 동시대적인 느낌을 가져오려 했는데 진행이 되면서 그게 인물들의 에너지를 발현할 장소로 바뀌어 갔다. 황학동 철거촌은 거기서 무슨 일이든 생겨날 수 있고 그래도 그게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공간이었다.”

그의 스승 격인 장선우 감독은 연기 경험이 없다. “처음엔 한진희씨를 염두에 뒀는데 성사되지 않았다. 제작사에서 장 감독 얘기를 했고 시나리오를 다시 보니까 장수로의 행동이나 대사가 희한하게도 내가 알고 있는 장 감독과 닮아 있었다. 처음엔 연기가 안 돼 멀리 찍거나 뒤통수를 찍는 걸로 화면을 바꾸기도 했다. 코치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고,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모양이다. 중간부터 연기가 되기 시작해서 앞의 분량을 다시 찍기도 했다.” 〈귀여워〉는 11월 말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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