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 릴레이] <여자 정혜>, <귀여워> 김소영 영화평론가
2004-10-19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작품성 뛰어난 저예산 영화들 영화제용으로만 끝나지 않길

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인 뉴 커런츠에서 수상한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우측 사진)는 내년쯤에나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리뷰하는 것이 영화 비평 릴레이가 독자와 맺고 있는 약속이지만, 뉴 커런츠 부문 한국 영화 상영작 중의 두 편인 〈여자, 정혜〉와 김수현 감독의 〈귀여워〉를 소개하고자 한다. 언젠가 이 지면에서 투덜거렸듯이 저예산 영화의 극장 상영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비평적 공간이 상영 공간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여자, 정혜〉는 혼자 주공 아파트에 살면서 우체국에 나가 소포의 무게를 재고 우표를 붙이는 일을 하는 정혜(김지수)의 일상을 그린다. 또 그 일상을 헤집어 아찔하게 만드는 기억과 교차시킨다. 그 결과, 영화는 정감 있고 정확하다. 정혜는 버려진 작은 고양이를 데리고 와 기름진 참치를 먹이고, 자신의 김밥 속을 골라 먹지만 나쁜 기억을 솎아내지는 못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 어떠한 결정적 상처가 유년에 가해지는 장면이 필요 없다고 느껴질 만큼 〈여자, 정혜〉는 매 장면들을 작은 긴장들로 은근하게 채운다. 아마도 허진호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허 감독의 영화처럼 슬쩍 무심하다기보다는 번쩍 유심하다. 실제로 여자 정혜가 ‘미안하다’고 속삭이며 아기 고양이를 다시 밖에 내려놓는 장면에서 나는 얼른 뛰어가 그 고양이를 돌보고 싶었다.

한편 김수현 감독의 〈귀여워〉(우측 사진)는 부산국제영화제 허문영 프로그래머의 표현처럼 에미르 쿠스트리차를 불러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대단히 공을 들이고 있는 서울 황학동에 대한 지정학적, 인류학적 고찰이 한국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황학동 철거 지역을 공간적으로 탐사함과 더불어, 이 영화의 가장 파격적인 창안은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공생을 해학적으로 들여다본 것이다. 장선우 감독이 연기한 무당이자 바람둥이인 아버지 역에는 최우수 연기상이라도 주고 싶을 정도다. 그는 권력은 없으나 매력은 남아 있는, 저물어가는 중년 남자를 참 태연하게 잘도 연기한다. 반면 아버지와 세 아들 모두에게 마술같은 사랑을 발휘해 그들을 이상한 성적 공동체로 만들어버리는 여자 순이 역의 예지원은 그야말로 차도에 뛰어드는 등의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연기하는데도, 완벽한 미스캐스팅이다. 안타깝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멀티플렉스 극장이 확산됨에 따라 아트하우스 극장들이 감소하고, 생산자의 의도와는 달리 오직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제용 영화들이 늘어가고 있다. 〈여자, 정혜〉가 그 운명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