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인 뉴 커런츠에서 수상한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우측 사진)는 내년쯤에나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리뷰하는 것이 영화 비평 릴레이가 독자와 맺고 있는 약속이지만, 뉴 커런츠 부문 한국 영화 상영작 중의 두 편인 〈여자, 정혜〉와 김수현 감독의 〈귀여워〉를 소개하고자 한다. 언젠가 이 지면에서 투덜거렸듯이 저예산 영화의 극장 상영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비평적 공간이 상영 공간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여자, 정혜〉는 혼자 주공 아파트에 살면서 우체국에 나가 소포의 무게를 재고 우표를 붙이는 일을 하는 정혜(김지수)의 일상을 그린다. 또 그 일상을 헤집어 아찔하게 만드는 기억과 교차시킨다. 그 결과, 영화는 정감 있고 정확하다. 정혜는 버려진 작은 고양이를 데리고 와 기름진 참치를 먹이고, 자신의 김밥 속을 골라 먹지만 나쁜 기억을 솎아내지는 못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 어떠한 결정적 상처가 유년에 가해지는 장면이 필요 없다고 느껴질 만큼 〈여자, 정혜〉는 매 장면들을 작은 긴장들로 은근하게 채운다. 아마도 허진호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허 감독의 영화처럼 슬쩍 무심하다기보다는 번쩍 유심하다. 실제로 여자 정혜가 ‘미안하다’고 속삭이며 아기 고양이를 다시 밖에 내려놓는 장면에서 나는 얼른 뛰어가 그 고양이를 돌보고 싶었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멀티플렉스 극장이 확산됨에 따라 아트하우스 극장들이 감소하고, 생산자의 의도와는 달리 오직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제용 영화들이 늘어가고 있다. 〈여자, 정혜〉가 그 운명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