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쓰마부키 사토시
2004-10-27
글 : 김도훈
사진 : 오계옥
강단을 숨겨놓은 순수한 웃음

쓰마부키 사토시처럼 ‘미소년’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배우도 드물다. 이 25살의 일본 청년은 참으로 기분 좋게 웃을 줄 알기 때문이다. 멋지게 웃는 것도 재능이라는 말이 있었던가. 그런 재능을 지닌 쓰마부키 사토시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홍보를 위해 지난 10월20일 서울을 방문했다. 인터뷰 자리로 들어서니 예의 그 웃음이 먼저 사람을 반긴다. 상대방을 완전 무장해제시키는 미소다.

<워터 보이즈> 이후 그의 행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 영화계 소식에 어두운 이 나라 사정 때문일 테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그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는 남자 배우다. 지난해 출연한 드라마 <블랙잭에게 안부를>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역시 인기만화를 원작으로 한 재난영화 <드래곤 헤드>에 출연했으며, 작년 개봉한 <사요나라 쿠로>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비평가와 관객들의 찬사를 받아냈다. 손바닥만한 수영복을 입고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을 지휘하던 사람 좋은 소년은 이제 일본영화의 당당한 주역으로까지 성장을 하게 된 것이다. 단 2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조제…>에서 그는 장애를 가진 소녀 조제와 기묘한 연애를 하는 대학생 츠네오 역할을 맡았다. “시나리오를 읽는 과정에서 마음이 애틋해졌어요. 슬퍼지기도 했고. 연애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독특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눈이 영화속 츠네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순진함, 뭔가를 숨길 줄 모르는 직설적인 동공 속의 대사들.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녀와 힘겨운 사랑을 나누다가 그 사랑의 두려운 미래앞에서 솔직하게 이별을 고하는 남자의 모습이다. 아니나 다를까 쓰마부키는 자신의 연애경험을 조막조막 이야기하며 츠네오는 바로 자신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연애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실제로 연애에서 도망쳐버린 경험도 있고. 그래서 츠네오의 심정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저 이끌리듯이. 그렇게 연기를 한 것 같아요.” 그 막연한 순수함이 못내 의심스러운 기자의 얼굴 앞에 쓰마부키는 또다시 웃음을 흘렸다. “원래 남자들은 욕심이 앞서잖아요. 지금 상황에서 더 좋을 수도 있을 거라고 항상 머뭇거리죠. 결단력이 없어서 마지막 한발을 떼지 못하는 게 남자죠.”

하지만 쓰마부키 사토시는 그 한발을 제대로 뗀 남자다. 1998년 개최된 <제 1회 스타오디션>에서 300만대 1이라는 일본역사상 최고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소년은, 작년 <조제...>와 <사요나라 쿠로>로 영화잡지 <키네마준보>의 일본영화주연남우상을 수상했다. 50년이 넘는 <키네마준보>의 역사상 20대의 남자배우가 그 상을 받아낸것은 단 2번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강한 여자에 쉼없이 휘둘리는 역할만을 맡아온, 사람 좋은 웃음의 청년에게서 그런 ‘한발’을 읽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여자들에게 휘둘린다고요? 그런 면이 실제로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사실, 그 편이 더 편한 거 아닌가요?”라고 웃어넘기거나 “욕심이 많아요. 그래서 한 가지 타입의 역할만을 맡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라고 말하거나, 신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후회하지 않는 것”이라고 가볍게 응수할 때 비로소 행간과 미소에 감춰진 한발의 강단이 담백하게 전해진다.

어떤 일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갑자기 난감해하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왜. 뭔가 까다로운 질문인가. 매니저들이 곤란해하나. 일본에서는 원래 이런 거 물어보는 게 예의에 어긋나는 일인가.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쓰마부키 사토시는 곤란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무 많아요… 정말로. 너무 많아서… 이와이 순지 영화에 출연하고 싶고, 최양일 영화도… 에… 너무 많아서 대답을 할 수가 없어요.” 부러질 듯 호리호리한 몸매에 손수 왁스로 손질한 머리를 한 욕심 많은 미소년의 이름은 쓰마부키 사토시다. 일본영화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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