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도쿄] 부산 따라잡기, 성공할까
2004-11-02
글 : 김영희 (한겨레 기자)
부산국제영화제 의식하는 제17회 도쿄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따라잡아라! 지난 10월23일부터 31일까지 계속된 제17회 도쿄국제영화제는 일본 영화계가 한국 영화계를 의식하고 있음이 역력히 드러난 행사였다. 비록 개막식이 열린 시각, 니가타현에서 규모 7의 강진이 발생해 관심이 줄어들긴 했지만 지난해 영화제의 제너럴 프로듀서로 취임한 가도카와 스구히코(가도카와 그룹 사장)가 영화제의 개혁을 다짐한 뒤 본격적으로 열린 영화제라 큰 관심을 모았다.

일단 규모면. 도쿄영화제는 ‘세계 10대 영화제’임을 강조하며 도쿄판타스틱영화제, 도쿄국제여성영화제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협찬기획의 영화제까지 포함해 전세계에서 351편의 작품을 초대했다. 메인 상영장이 16년간 열리던 시부야 분카무라와 함께 롯폰기 힐스까지 두곳으로 늘어났고, 도쿄의 새 상징인 화려한 롯폰기 힐스 앞에 레드카펫 행사가 펼쳐진 뒤 열린 개막식엔 고이즈미 총리가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개막작은 일본의 노장 야마다 요지 감독의 전작 <황혼의 사무라이>보다 조금 더 시대를 거슬러올라가 막부 말기, 작은 시골지방의 사무라이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숨은 검>이었다. 적어도 <라스트 사무라이> 같은 할리우드영화가 이방인의 눈으로 ‘장엄하게’ 그려내던 사무라이가 아니라, 진짜 일본의 근대를 살아가던, 무기력한 듯해 보이지만 새로운 삶을 찾는 사무라이들의 모습을 때론 유머스럽게 때론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야마다 감독은 올해 일본인으로선 처음으로 이 영화제의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으로 추대돼 한국의 이창동 감독 등과 함께 심사를 맡았다. 개막전야제 작품으로 이 상영되며 기무라 다쿠야가 무대인사를 하고, 개막식 밤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일본에서 첫 공개되는가 하면 폐막작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터미널> 상영에 맞춰 톰 행크스가 일본을 찾는 등 대중적인 면에선 이전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뒀다.

눈에 띄는 시도는 부산영화제의 PPP를 의식한 마켓의 신설이다. 영화제 초기 별 성과없이 폐지됐던 마켓이 12년 만에 ‘도쿄 국제 엔터테인먼트 마켓’과 ‘도쿄 국제 필름&콘텐츠 마켓’으로 부활한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마켓은 10월22∼24일 치바현 컨벤션센터에서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를 중심으로, 필름&콘텐츠 마켓은 10월25∼27일 롯폰기 힐스에서 영화와 TV 프로그램 중심으로 열렸다. 필름&콘텐츠 마켓엔 일본, 한국, 홍콩, 인도 등의 제작사 80여곳의 부스가 설치됐다. 사카이 마사요시 조직위 사무국장은 “이제까지 일본은 해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90년대 말부터 한국영화의 성공을 보며 콘텐츠의 중요성에 새삼 주목했다”며 “영화만으로는 부산영화제와 경쟁이 안 되기 때문에 TV 프로그램과 애니메이션까지 범위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도쿄영화제쪽은 “적어도 5년 안에 자리잡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영화 부문을 대폭 강화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경쟁부문과 함께 메인부문인 ‘아시아영화의 바람’에는 지난해의 두배가 넘는 35편이 초청됐다. 니가타영화제의 우에쓰카 마사유키는 “아시아인들은 물론 유럽, 미국쪽에서도 아시아영화를 보기 위해 부산으로 몰리면서 도쿄영화제가 확실히 위기의식을 느낀 것 같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최신 일본영화를 선보이는 ‘일본영화, 어느 시점’, 도쿄아니메영화제, 도쿄 넷 무비 페스티벌 등 새로운 부문을 대거 신설했다. 원래 일본의 주력 부문부터 첨단 분야까지 한꺼번에 영화제에 아우르려는 의욕 넘치는 시도였지만 깊이보다는 버라이어티에 치중한 느낌이었다. 마켓 또한 부산영화제와 아메리칸필름마켓(AFM) 사이에 시기가 끼어, 비행기표와 숙박비까지 전액 대며 초청을 했지만 참가사는 일본 제작사가 대부분이었다.

도쿄영화제에서도 최근의 ‘한류’ 붐은 지속됐다. 특별초청 작품인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예매 2분 만에 완전매진을 기록했고 경쟁부문에 오른 <효자동 이발사> <바람의 파이터>, 아시아영화의 바람 부문의 <꽃피는 봄이 오면> <늑대의 유혹> <가능한 변화들> <이공>도 일찌감치 표가 동이 났다. 일단 가도카와 사장이 영화제를 맡으며 예산과 규모를 대폭 늘리는 데 성공한 도쿄영화제가 앞으로 부산영화제와 경쟁할 정도로 자리잡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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