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교토영화제, 찬바라영화의 원조가 교토임을 천명하다
2004-11-02
글 : 김려실 (자유기고가)

진정한 칼싸움이란 이런 것

일본의 천년고도인 교토. 파기만 하면 유물이 쏟아져 지하철공사가 난관을 겪었다는, 도시 자체가 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곳에서 올 가을, 그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아는 묻혀 있던 문화재가 또 몇점 공개되었다. 그 문화재란 바로 일본영화.

일본영화 발굴 및 복원의 선봉대는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필름센터와 교토영화제이다. 1984년의 화재 이후 가나가와현에 최첨단 방재 방화 시스템을 갖춘 보관소를 건설해 필름을 보존하고 있는 필름센터는 1999년부터 러시아의 영화보존기관인 고스필모폰드에 있던 일본영화를 정리하면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자국영화 발굴에 힘쓰고 있다. 고스필모폰드의 일본영화들은 만주에서 상영되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쪽에 의해 접수된 것들인데 필름센터의 연구원 쓰네이시 후미코(常石史子)에 의하면 소련쪽에서 일본영화로 분류하고 있던 영화들 중에는 간간이 중국영화와 함께 한국영화도 끼어 있었다고 한다. 일제 말기까지 만주국에는 한국인이 230만명 정도 이주해 있었으므로 그들을 대상으로 수출된 한국영화가 일본영화로 분류되어 고스필모폰드의 창고에서 잠자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민간 주최, 시민 자원활동, ‘모두가 함께 만드는 영화제’

한편, 1997년에 시작된 교토영화제는 교토에서 제작된 영화를 복원하여 문화재로서 다시 관객 앞에 선보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과거의 영광을 발판으로 새롭게 거듭나자는 온고지신의 영화제답게 여러 벌의 필름 중 가장 좋은 상태의 것을 모아 영화제용 뉴프린트를 만드는 것이다. 초창기부터 일본영화는 시대극은 교토, 현대극은 도쿄라는 전통이 있었고 시대극의 전성기에는 쇼치쿠, 도에이, 다이에이 등 메이저 회사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군소영화사가 교토에 스튜디오를 건설했다. 당시의 명작들은 홈비디오가 일반화된 80년대에는 비디오로, 요즘은 DVD와 케이블 방송을 통해 다시 관객을 찾고 있는 만큼 옛날 영화라고 해서 수요가 없진 않다. 교토영화제는 이같은 수요를 흡수하여 올드팬들에게는 옛 명작들을 다시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기회로, 시대극을 모르는 세대에게는 영화교육의 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 ‘영화는 국경을 넘는다’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은 할리우드 찬바라영화의 원조가 교토임을 언급했다.

격년제로 열리는 교토영화제는 원래 2003년에 열려야 했으나 주관단체가 교토시에서 민간으로 이전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해가 미루어졌다. 문화재 보수로 적자를 면할 길이 없다는 교토시가 빠진 대신 지난해부터 일본영화 종합 진흥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문화청이 영화제 지원에 나섰다. 여기에 교토 시민들의 막강 볼런티어 정신이 보태지면서 ‘모두가 함께 만드는 영화제’로 심기일전하게 되었다. 민간에서 주최하는 까닭인지 확실히 예년에 비해 올해는 스튜디오 견학, 엑스트라 출연 등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풍부해졌다. “교토에서 만들어진 명작영화를 통해 찬바라영화의 진수를 알아주길 바란다”는 종합 프로듀서 나카지마 사다오(中島貞夫) 감독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지난 9월18일부터 26일까지 ‘교토에서 세계로 찬바라영화’라는 테마 아래 36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킬빌> <라스트 사무라이>는 할리우드 ‘찬바라’?!

‘찬찬’(칼날이 쨍쨍 부딪치는 소리)과 ‘바라바라’(후두두 피가 흩뿌려지는 소리)라는 의성어가 축약된 ‘찬바라’ 영화는 한마디로 검술영화이다. 한때 이 용어는 코흘리개들이나 보는 칼싸움 영화라는 뜻으로 시대극을 폄하할 때 사용되기도 했는데 올해 교토영화제가 찬바라영화를 메인 테마로 삼은 것은 최근 할리우드의 동향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킬빌>과 <라스트 사무라이>가 할리우드의 재패니즘에 불을 댕긴 이후 지난 8월에는 윌리엄 볼드윈 주연의 액션시대극 <사쿠라>가 도에이 교토 스튜디오에서 로케를 마쳤던 것이다. <와호장룡>과 <영웅>의 화려한 중국 검술에 뒤이어 이제 찬바라가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소재로 각광받는 시기가 도래한 것일까? 올 여름에는 <반헬싱> <킹 아더>도 칼을 들고 무림평정, 아니 박스오피스 쟁탈전에 뛰어들었으니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트렌드가 총싸움에서 칼싸움으로 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 <특급삼백리>를 상영 중인 교토영화제 전경.

지난 9월20일 ‘영화는 국경을 넘는다’는 주제로 열린 <무사도> 공개기념 심포지엄에서 일본의 평론가들은 이 영화들을 할리우드 찬바라영화로 호명하면서 찬바라영화의 원조는 일본의 교토임을 천명했다. 중국의 동북공정도 아니고 미국영화인 <킬 빌>과 <라스트 사무라이>가 찬바라영화라니 이 무슨 창의적인 억지인가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납득이 간다. 예를 들어 상영작 중 하나인 <쥬베암살검>(十兵衛暗殺劍, 1964)은 타란티노가 칼로 눈알을 도려내 관객을 경악시키는 법을 바로 여기서 배웠음을 알 수 있는 작품. 그러고보니 <킬 빌>의 내러티브 자체가 오야붕인 ‘빌’과 꼬붕 ‘더 브라이드’ 사이의 우라기리(배신)와 아다우치(복수)이니 일본인들 눈에는 야쿠자영화로 보이지 않을 수 없고 <라스트 사무라이>는 햇병아리가 수련을 통해 진정한 사무라이가 된다는 지도 이야기(指導物語)이니 시대극으로 보이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우마 서먼과 톰 크루즈는 총 대신 일본도로 ‘찬찬’, ‘바라바라’ 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그 자신도 60년대 초반 도에이의 교토촬영소에 배속된 이후 시대극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인 나카지마 감독에 의하면 두 영화 모두 찬바라신이 영 시원찮다는 평이었지만. 물론 영화제쪽은 더글러스 페어뱅크스의 현란한 펜싱 솜씨가 당시 일본의 찬바라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기걸(奇傑)조로>(The Mark of Zorro, 1920)와 일본 배우 나카이 기이치(中井貴一) 주연의 중국영화 <천지영웅>(2003)도 라인업해서 영화는 국경을 넘는다는 테마에 균형을 맞추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영화제의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가부키 극장인 기온회관(祇園會館)에서 500여명의 시민과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특별상영된 노무라 게이이치(野村一) 감독의 <천사와 자전거를 타고>(Turn Over, 2004)였다. 교토영화조성 기금으로, 교토에서, 교토의 배우와 스탭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아직도 교토의 ‘영화력’(映畵力)이 건재함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아직 4회밖에 안 된 영화제이지만 마지막 날까지 상영실수 한번 없이 행사운영이 철저한 것을 보니 교토는 일본 속 일본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교토영화제 주요 상영작

문화재같은 영화, 영화같은 문화재<무사도> 武士道 1926년 l 가코 잔무, 하인리히 칼 하이란트 l 83분 l 흑백 l 무성 l 東亞等持院국제필름아카이브연맹(FIAF)의 네트워크를 통해 발견 및 복원된 일·독 합작의 시대극. 1924년 교토에서 제작되었지만 독일영화로 분류되어 발견이 늦어졌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서구에서 무사도는 일본 문화의 키워드로 이해되었고 일본에 온 적 없는 프리츠 랑이 <할복>(1920)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을 정도로 무사도를 소재로 한 오리엔탈리즘적인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다. 올해 교토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된 <무사도>도 역시 일본에 표류해온 서양인이 사무라이들에 의해 구출된 뒤 그들의 문화에 감화되어 함께 싸우고 총기제조법을 가르쳐준다는 내용으로 <라스트 사무라이>의 원조격이라 할 만하다.

<참인참마검> 斬人斬馬劍 1929년 l 이토 다이스케 l 26분(부분) l 흑백 l 무성 l 쇼치쿠 교토떠돌이 사무라이가 농민을 착취하는 권력자를 처단하는 경향영화의 시대극 버전. 소실된 줄 알고 있다가 장난감용으로 제작되던 9.5mm 필름의 일부가 2002년에 발견되어 2003년 네덜란드의 하게필름보존소(HagheFilm Conservation)의 최첨단 기술로 디지털 복원되었다.

<특급삼백리> 特急三百里 1928년 l 사에구사 겐지로 l 82분 l 흑백 l 무성 l 닛카쓰 교토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도쿄의 스튜디오가 폐쇄되어 잠시 교토가 현대극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시절의 작품. 75년 전의 교토역과 연기를 내뿜으며 질주하는 증기기관차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기적적인 완전판의 형태로 발견되었다. 올해의 개막작으로 영화 내용에 걸맞게 교토역 광장에서 무성영화 반주 전문가 귄터 A. 부흐발트의 라이브 반주와 함께 상영되었다. 9월23일의 재상영에서는 반주와 함께 변사 이노우에 요이치의 활변이 더해져 관객에게 무성영화를 원래의 형태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청공천사> 靑空天使 1950년 l 사이토 도라지로 l 61분(단축판) l 흑백 l 토키 l 太泉희극영화의 거장 사이토 감독과 패전 뒤 고도성장기의 아이콘이었던 가수 미소라 히바리에 의한 초기 ‘히바리 영화’로 필름의 80% 정도가 올해 발견되었다. 당시 13살이었던 미소라는 패전 뒤 중국에서 귀환하다 헤어진 모친을 찾는 소녀 역할을 맡았다. 연합국군총사령부(GHQ)의 통치를 받던 시절, 일본에서는 복수, 충성, 폭력이라는 소재가 검열의 대상이 되어 찬바라를 포함한 시대극영화가 거의 제작되지 못했다. GHQ 통치 말기에 제작된 인정희극인 <청공천사>에는 귀환열차에 빼곡히 들어찬 군인들, 고아수용소, 급격히 미국화된 거리의 풍경이 담겨져 있으면서도 천재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가 전후의 우울한 분위기를 걷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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