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절제의 미학
먼저 원작을 읽었더라면, 어떤 느낌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을까. 죽음과도 같은 영원한 행복이 아니라, 이별 이후의 또 다른 삶이라니. 시나리오 작가인 와타나베 아야는, 대담하게도 첫 각색작품에서 해피엔딩의 결말을 언해피엔딩으로 바꾸어버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원작의 아우라는 전혀, 고즈넉한 숨결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다른 해석을 가미한 것이 아니라, “두터운 골격을 압축시켜놓은 원작에 캐스팅된 배우들을 겹쳐놓고 해동(解凍)시켰다는 느낌이랄까. 주연을 맡은 두 사람은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지만 단순하게 깨끗하고 예쁜 이야기만은 되지 않을 거라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플롯으로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이미지의 세계에 침잠하다보면 그곳에서 등장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인다.” 와타나베 아야의 진술처럼 영화로 각색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원작의 정수를 견지하면서도, 확장된 세계로 떠난 조제의 의지와 슬픔을 보여준다.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 그런 생각을 할 때 조제는 행복하다… 츠네오가 언제 조제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 지음)
와타나베 아야는, 조제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별로 외롭지는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 대로 나쁘진 않아.”
조제, 츠네오를 만나 세상 밖으로 나오다
서로 다른 듯도 하지만, 일관된 것은 삶에 대한 긍정이다. 긍정? 역설적이지만, 그들은 죽음을 늘 생각하기 때문에 삶을 받아들인다. 어둠 속에서 이미 오랫동안 있었기에, 빛이 사라질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제는 츠네오의 손을 잡고, 토끼를 따라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들어갔듯이, 깊은 바닷속에서 헤엄쳐 이 세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호랑이를 보았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호랑이를 보겠다고… 만일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평생 진짜 호랑이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호랑이를 보게 된 조제는, 이제 휠체어를 살 수도 있다. 문자를 통해서 얻은 지식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면서 얻은 지혜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정말일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화자는 츠네오이지만, 우리의 눈은 조제에게 박힌다. 츠네오의 마음만을 따라가면, 우리는 조제의 등을 보지 못할 것이다. 처음 만난 츠네오에게, 조제는 칼을 휘두른다. 세상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악의를 가진 사람이 있다. 세상은 잔인하다. 그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아니 주변에서 들여다보기만 할지라도 뭔가 다짐과 용기가 필요하다. 오사카 사투리를 쓰는 조제의 말투는, 초등학생이 국어교과서를 읽듯이 장단고저가 없이 뱉어진다. 되도록 감정을 싣지 않고, 되도록 전투적으로. 계란말이가 맛있네요라는 칭찬에 당연하지, 내가 만든 것인데, 라고 답하고 달걀 껍질에 새똥이 묻어 있었기 때문에 식중독에 걸릴 거라고 말한다. 살모넬라균 때문이고, 대학생이 그것도 모르냐고 비난한다. ‘비난한다.’ 그게 조제가 세상을 대하는 방법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되도록 두껍게 벽을 치고, 상대가 돌아서게 만드는 것. 츠네오를 빼앗긴 여인이 던진 “솔직히 네 무기가 부러워”라는 공격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럼 너도 다리를 잘라”라고 말하는 조제를 보고 있으면, 조제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정글에서의 생존비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조제와 츠네오의 100% 연애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조제의 생명력을 단지 과시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츠네오가 조제를 발견하는 이유는, 식사장면에서 드러난다. 도움을 준 대가로, 아침을 먹으라는 할머니의 권유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츠네오. 마지못해 국을 마시고, 밥을 떠먹은 츠네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오! 아주 맛있는데! 라는 말이 그대로 얼굴에 쓰여 있다. 그 만족스러운 표정,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츠네오란 인물이 단박에 들어온다. 그렇기에 츠네오는 조제를 발견한다.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조제에게, 가장 원초적인 이유로 끌리는 것이다. 그걸 말로 할 수는 없다. “생각해도 소용없는 일은 그냥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라는 츠네오의 말처럼, 그건 생각이 아니라 감정이다. 어느 순간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와 주인이 되어버린 감정. 그건 말이 아니라, 츠네오의 표정으로 읽어야 한다. “마음속 내면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말로는 완벽하게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그저, ‘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쓰마부키 사토시의 말처럼.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건 사랑 이야기다. <오아시스>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 이야기. 공주처럼 조제도 자신만의 꿈을 꾸고, 사랑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100% 연애영화’라는 프로듀서의 말처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들의 사랑과 이별 그 자체에만 몰두한다. 적어도 조제에게는, 사랑만이 유일한 통로였고 힘이었다. 이 세상으로 올라오기 위한. 하지만 남자는 비겁하고 약하다. 그건 츠네오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남자의 습성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조금씩 지쳐가다가, 더이상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넘어가버린 남녀의 마음을, 그들의 사랑과 이별을 영롱하게 보여준다. 애절하면서도, 상쾌하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원작소설에서, ‘1년 후’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건 와타나베 아야와 이누도 잇신의 세계다.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사강의 소설에 나온 말들은, 조제와 츠네오의 현실이 된다. 사랑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아무리 천진하고, 귀여워도, 언제나 그녀를 업고 해변을 뛰어다닐 수는 없다. 언젠가 지치고, 언젠가 식어버리고, 언젠가 뒤돌아설 것이다. 조제는, 새로운 것,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즉각 반응한다. 감정을 조절할 줄 모른다.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조제는, 세상의 모든 것에 열광한다. 하지만 터널의 빛에 감탄하던 조제에게, 츠네오는 ‘운전 중’이라고 퉁명스레 답한다. 휠체어를 사라면서, 언젠간 나도 늙는다구, 라고 말하는 츠네오의 등에, 조제는 말없이 얼굴을 묻는다.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할머니의 말처럼, 자신이 ‘망가진 것’임을 알고 있고, 자신을 바라보는 츠네오의 사랑이 영원한 것이 아님도 알고 있다. 츠네오는 조금씩 지쳐가고, 도망칠 것이다. 이누도 잇신은, 그 모든 것을 묵묵히 보여준다. 그들의 표정으로, 순간의 눈빛으로.
절제의 시선, 영화의 순도를 높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사랑이라는 것의 무거움을 말한다. 처음부터, 조제와 츠네오는 달랐다. 츠네오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지만, 조제는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오랜 세월 상처받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무엇을. 이 세상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그래서 이른 새벽에만 산책을 나갔던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다. 다행히 츠네오를 만나 조제는 세상으로 나갔고, 잠시의 영원한 행복으로 조제는 한 걸음 나아간다. 전동 휠체어를 탄 조제는,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 장을 보러 간다. 여전히 의자 위에서 다이빙을 하고, 자신이 만든 맛있는 식사를 한다. 고독하게, 그녀는 살아가고 있다.
와타나베 아야와 이누도 잇신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러나 정직하고 절제된 시선으로 조제를 바라본다. 그 절제와 고요함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순도를 100%까지 끌어올린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잔인하기까지 하지만, 그 사랑이 조제를 강하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