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연인은 헤어지고 나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사이도 있다. 여자친구 조제와 작별한 다음 츠네오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우리가 헤어지기까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아니다. 사실은 한가지다. 내가 도망친 거다. 나는 다시는 조제를 보지 못할 것이다.”
우정은 거리조절이 가능한 관계에서만 이루어진다. 걷지 못하는 소녀 조제, 할머니가 주워 오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는 소녀 조제, 사강의 소설 주인공 이름을 따 스스로를 조제라고 부르는 소녀 조제. 그 아이는 자신의 전 존재를 남자친구 츠네오에게 기댄다. 아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츠네오는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시작되는 사랑은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나 신비로운 마법의 시간은 곧 지난다. 일상 속에서 사랑은 더디게 부식한다. 전동 휠체어를 거부하고 어디든 자신의 등에 업혀서 다니고 싶어 하는 여자친구를 보면서 츠네오는 조금씩 지쳐가고, 표정은 차차 짜증스러워진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는 드물게 선량하지만 평범한, 고작 스물세 살짜리 남자아이일 뿐이니까. 조제가 자신에게 아주 많은 것을, 어쩌면 전부를 의지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츠네오는 조제를 떠난다. 그래서 그는 ‘내’가 없는 조제의 삶을 멀리서조차 지켜 볼 용기가 없다.
이 지점에서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은 세상 모든 첫사랑에 대한 은유가 된다. 생애 처음으로 타인과의 내밀한 친밀감을 경험한 사람은, 미처 아무 것도 ‘계산’하지 못한다.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의 거리를 조정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이기적으로 투정부린다. 자신의 장애와 결핍을 상대방이 온전히 채워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를 맡김으로써 사랑이 성립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그것 때문에 사랑은 붕괴되고 문득 이별이 찾아온다. ‘이별의 거울 속에 우리는 서로를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면 떠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당신이 남습니다’ (이성복, <이별1>중에서)
혼자 남은 뒤 전동휠체어를 타고 자전거들과 나란히 거리를 달리는 조제는, 더 이상 할머니의 낡은 유모차에 웅크리고 있거나 남자친구의 등에 업혀 칭얼거리는 예전의 조제가 아니다. 가장 무서우면서 동시에 가장 행복한 ‘호랑이의 순간’을 지나 왔으므로 조제는 스스로의 밥상을 위해 ‘물고기’를 구울 수 있게 되었다. 바짝 구워져 접시에 담긴 물고기처럼 그 아이는 이제 담백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츠네오의 후일담은 나오지 않지만 그 쾌활하고 쿨한 소년 역시 시끄러운 길가 한 구석에 주저앉아 터뜨린 울음을 통해 한 뼘 자랐을 것이다. 두고 온 것은 사랑이 아니라 청춘의 한 시절이다. 그들은 각각 그 시간을 통과해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현실적인 성장영화를 나는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