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저주는 살아 있다, <엑소시스트: 더 비기닝>
2004-11-16
글 : 김종연 (영화평론가)
Q. <엑소시스트> 속편의 폴 슈레이더식 설정을 레니 할린식으로 마무리하면? A. 저주는 살아 있다.

‘히트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재활용될 뿐이다!’ 십년도 훨씬 지난 영화의 속편을 뜬금없이 제작하질 않나(<더티 댄싱2>) 프레데터와 에일리언을 맞붙여 싸우게 하질 않나, 과거 히트작들을 무리하게 우려먹어야 할 만큼 소재 기근에 시달리는 할리우드의 최근 사정을 물론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곤 해도 제작하는 속편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졸작 신세를 면치 못했던 ‘저주받은 클래식’ <엑소시스트>에까지 다시금 손을 대다니, 얼마간 그 고충이 눈물겨울 지경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결론1) <엑소시스트: 더 비기닝>(이하 <엑소시스트4>)은 생각보다 끔찍하지만은 않다.

공포영화의 고전이 된 <엑소시스트>가 세기적 악몽이 된 이유는, 사실 180도 목 회전 신공을 보여준 소녀 리건(린다 블레어)의 엽기 충격 쇼 때문이 아니라 선과 악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믿기 힘든 심령 혈투를 너무나 리얼하게 만든 캐릭터들의 생생한 약동과 심리적 충돌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역사상 가장 민망한 졸작의 반열에 오른 두 속편은 꾸준히 메린 신부라는 다른 한축을 무시해왔다. 아마 그 점이(3편이 이미 한번 무시한 전례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2편에서 이미 전사(前史)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4편이 다시 그늘진 메린 신부의 아프리카의 행적으로 되돌아간 이유일 것이다.

25년 전의 메린 신부는 2차대전이 남긴 충격적인 기억으로 신심마저 잃고 지금은 의뢰를 받고 유물을 발굴하러 케냐에 온 고고학자. 그곳에서 그는 비밀스럽게 파묻힌 교회와 지하신전 속에서 25년 뒤 뉴욕에서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일 악령과 조우한다. 미션은 그러니까 신심을 회복하는 것. 4편이 새삼 기대를 모은 것은 인간의 어둔 측면을 파고드는 이 설정을, <어플릭션>과 <택시 드라이버>로 인간의 어두운 심리에 정통했다는 것을 인정받은 바 있는 폴 슈레이더가 연출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폴 슈레이더의 완성본은 ‘별로 안 무섭고 지나치게 심리적’이라는 이유로 폐기된다. 결국, <엑소시스트4>를 완성한 것은 <클리프 행어> <다이 하드2> 같은 스펙터클에 능한 레니 할린. 따라서 심리적 충돌 대신 영성(靈性)무협 액션으로 마무리되더라도 허탈해하지 마시라. 결론2: ‘<엑소시스트> 속편의 저주’는 건재하다. 결론3: 저주가 풀리는 것은 아마 폴 슈레이더 버전을 담을 게 확실한 <엑소시스트: 더 비기닝>의 DVD 출시 때까지 미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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