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한류열풍, 국제적 열풍인가? 찻잔 속의 폭풍인가?
2004-11-17
글 : 데릭 엘리 (<버라이어티> 수석국제평론가)
서구권에서는 힘 못받는 한류 열풍… 과다한 미니엄 개런티 집착 버려야

최근 몇년 동안 동아시아를 휩쓴 한국영화, 텔레비전 시리즈물, 음악, 패션에 대한 한류 열풍을 중국에선 “한훵”(한국 바람)이라 부른다. 최근 일본 웹사이트(OZmall)에서 15만7천명의 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시아 스타를 물었을 때 10명 중 9명은 한국인이었다. 유일하게 한국인이 아닌 사람은 일본과 중국 혼혈인 금성무였는데, 겨우 7위로 들어간 것이다.

△ 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올드보이>의 유럽 흥행 성적은 수상 결과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수치다. 이는 서구권에서의 한국영화의 입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사진은 칸영화제에 걸렸던 <올드보이> 포스터(맨 위). 한류는 현재로서는 오직 아시아권 내에서만 부는 바람이다. 사진은 상하이 거리에 붙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포스터(위).

이와 비슷한 설문조사는 서구에서 시행된 일은 없지만, 만일 그랬다면 장쯔이나 공리, 성룡, 주윤발, 양조위 등의 홍콩이나 중국 본토 이름들이 독점적으로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한국 바람”은 아시아 바깥으로 그리 멀리 불지 못한다.

아시아만 벗어나면 잠잠한 바람, 한류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고려해보자. 올해 가장 국제적으로 두드러진 한국영화 <올드보이>는 몇몇 유럽 국가에 현재 개봉 중이다. 프랑스에선 총 15만명의 관객이 들 전망이고, 영국에선 3주 동안 지금까지 약 5만명이 들었다. 독일에서 극장 막을 내린 지금, 총 5만명 정도가 들었다(주: 특히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관객 수가 아닌 극장 수익만 발표한다. 이 기사를 위해 국가별 평균 푯값을 사용하여 수익을 관객 수로 전환시켰다. 결과는 아주 대략적일 수밖에 없지만, 전체적 그림을 좀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유럽에서 개봉한 외국어영화치고 봐줄 만한 수치다. 그러나 칸에서 각광받은 것을 생각하면(쿠엔틴 타란티노가 “개인적으로 추천”한 것에 더해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것), 실망스러운 수치다. 배급사들에 팔린 가격에, 상당한 P&A 비용을 생각하면 프랑스에서 수익을 남기지 못할 전망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돈을 벌지 못하면, 배급업자들은 다음 한국영화를 살 때 더 조심스러워질 것이다.서구권 흥행수익 저조- 한국영화 입지는 여전히 좁다

프랑스, 영국, 미국이 서양에서 한국영화의 가장 큰 시장이지만, 각국의 비교되는 이야기들은 놀라울 정도다.

지금까지 서구에서 개봉한 한국영화로 가장 인기있었던 것은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었다. 미국에서 37만명, 독일에서 24만명, 프랑스에서 20만명, 영국에서 5만7천명의 관객을 불러들였다. 모든 시장에서 이 정도의 전면적인 성공을 이끈 한국영화는 없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지금까지 서구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흥행성적이 좋았다(맨 위).<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프랑스에서 6만명이나 들었지만 미국과 영국에서는 아직 배급사를 찾지 못하고 있다(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은 프랑스에서 32만명의 관객이 들어 수익을 남겼지만, 미국에선 1만명, 영국에선 7천명밖에 끌어오지 못했다. 대조적으로 임 감독의 <춘향전>은 미국에서 13만명을 끌어왔지만, 프랑스에선 5만명밖에 끌지 못했다. 영국에서는 결코 개봉되지 않았다.

다음 영화들의 결과는 더 진지하게 읽게 된다. <무사>는 프랑스에서 15만명이 들었지만 다른 곳에선 참패했다.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프랑스에서 6만명이 들었지만 미국과 영국에서는 아직 배급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공식통계에 의하면 <태극기 휘날리며>는 미국에서 15만명을 끌었지만,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아직 개봉되지 않고 있다. <쉬리>는 영국과 미국에서 개봉되기까지 거의 5년을 기다려야만 했는데, 각각 3천명과 1만6천명밖에 끌어들이지 못했다.

다른 영화의 수치도 같은 이야기를 나타낸다. 자국 내나 동아시아 내에서의 성공은 서구에서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오우삼스러운” 액션영화로 잔뜩 홍보되긴 했지만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미국에서 4천명 정도의 관객이 들었다. <친구>는 서구에서 거의 개봉되지 않았고, 아시아 공포영화의 물결을 탄 <장화, 홍련>은 영국에서 겨우 1만5천명이 들었다. 다른 영화들도 극장 개봉에서 미미한 흥행 수치를 남겼다.

수익성은- 관객 수에 대비되는 것으로- 다른 문제지만, 마찬가지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사>는 프랑스에서 15만명 흥행으로 괜찮았지만, 배급사는 영화를 비싼 가격에 구매한데다가 P&A 비용도 굉장히 많이 썼다. <장화, 홍련>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아마 프랑스에서 한국영화치고 P&A 비용을 가장 많이 들인 경우일 것이다. 대조적으로 <봄 여름…>과 <여자는…> 같은 영화는 P&A 비용을 덜 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더 높았다.

이런 모든 수치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한국영화가 <쉬리>로 “국제적인” 모습을 드러낸 지 5년이 된 시점에- 한국영화의 서양시장이 여전히 작다는 것이다. 이따금 생기는 성공은 특수한 이유로 인한 것이다. 예를 들어 임권택 감독의 이국적인 시대의상 영화는 프랑스인 취향에 호소하지만 그 외에는 별로 효력이 없고,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은 단순히 스토리가 전통적인 아시아 이미지들에 포장된 것 때문에 서양에서 성공적이었으며(그의 현대적 영화들은 전혀 성공하지 못했음), 한국 공포영화나 액션영화 시장이 작게나마 존재해도 <와호장룡> <영웅> <연인> 같은 중국 액션영화의 시장이나 <링> <검은 물 밑에서> 같은 일본 공포영화의 것에 비하면 무의미할 정도다. 한국 멜로드라마와 코미디물은 서양에서 본질적으로 시장이 없다.

△ <무사>는 프랑스에서 15만명이 들어 흥행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참패했다(위).

지난 10년간 한국영화의 부활이 세계영화의 가장 신나는 발전사항 중 하나라 믿는 사람으로서, 필자는 슬픔을 갖고 이 기사를 쓴다. 서구 취향의 도서성(島嶼性)에 대한 슬픔, 타국에서 온 영화를 억누르고 그럼으로써 관객의 취향을 형성시키는 미국지배의 배급 및 극장 시스템의 힘에 대한 슬픔, 일부 한국영화 세일즈 대행사들이 실정에 맞지 않는 가격과 과다하게 높은 미니멈 개런티(MG)를 부름으로써 영화의 서구에서의 미래를 저해하는 것에 대한 슬픔이다.

5년이 지난 지금, 한국영화의 미래는 칼날 위에 서 있으며 아직 자기 정체성을 단조해나가기 위해 멀리 나아가야 할 상황이다. 보통 견문이 넓고 영화에 유식한 서양 관객에게 한국영화 스타 한명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대답을 못할 것이다. 감독 이름이라면? 어쩌면 임권택, 어쩌면 김기덕, 어쩌면 (프랑스에서나) 홍상수를 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감독들은 영화제를 통해서 알려진 이들이지, 일반 극장가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

서구에 장기적으로 의식을 갖고 한국영화에 관계하는 배급업자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수익성이 모든 것인 업계에서 자선사업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한국 세일즈 대행사들은 실정에 맞지 않게 높은 가격으로 가능성 있는 고객을 소원하게 하기보다 시장을 좀더 현실적이고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통 서양 관객에겐 아시아영화라면 중국영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중국영화는 액션영화와 이따금 나타나서는 잘해봐야 장사가 조금 될까말까한 왕가위의 예술가 계통 영화를 의미한다. 한국영화가 발전하는 틈새가 있다치면 색다르며 종종 어둡게 폭력적인 영화쪽이다. 영국에서 <올드보이>에 대한 평은- 매우 뒤섞여 있었지만- 극도의 폭력성에 집중됐으며 <섬>이나 <장화, 홍련> <살인의 추억> <폰>과 같은 다른 영화들은 모두 “색다른” 맛이나 “별난” 맛으로 인지됐다. 관객은 동아시아 영화계에서 새롭게 나타난 한국영화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지만, 아직 이름과 정체를 붙여주려고 헤매는 중이다. 단지 한국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보러 가는 사람은 아직 없다.

위의 모든 내용은 최신작을 인터넷에서 구매하는 전문지식으로 특화된 괴짜 영화광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내용이다. 그리고 위의 영화 중 극장에서는 평균 이하로 흥행하였음에도 DVD로는 잘 나가는 것도 여러 편 있다. 심지어 영국 배급사 메트로 타르탄은 아시아 엑스트림이라는 전문 비디오 라벨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영국의 크게 발달한 홈엔터테인먼트 시장과 같은 데서도 수치는 여전히 작다. 수천개가 나가지 수만개가 나가진 않으며, 수십만개는 더더욱 아니다.

서구 관객을 끌려면 정기적 배급이 필수

아시아에서 “한국 바람”은 겹치는 문화와 텔레비전 시리즈의 힘과 대중음악과 패션의 K.O. 효과 덕을 봤다. 서양에서의 “한국 바람”은 이런 요소들이 도와주지 못한다. 한국영화가 진정 인상을 남기려면- 간혹 나타나는 작은 성공을 넘어서- 서구 관객의 주된 의식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정기적으로 배급되는 영화가 더 많아져야 할 것이고(그러므로 세일즈 대행사들이 미니멈 개런티보다 수익분배 위주로 계약건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한국 감독과 스타가 자국업계 밖에서 일을 더 하면서 국제적으로 더 많이 알려져야 할 것이다.

아직은 초창기다. 중국어권 영화가 현재의 국제 위상을 누리기까지 30년이 걸렸다. 그렇지만 “한국 바람”이 지역의 비밀로 남게 된다면 끔찍하게 유감스러운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세계영화의 손실이 될 것이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