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본 박스오피스 10위로 겨우 얼굴을 내밀었던 <올드보이>가 이번주에는 탑10에서 사라졌다. 배용준의 애칭 '욘사마'가 올해 일본 유행어 1위가 되고 대일본 영화수출가격이 연일 갱신되는 등 어느때보다 한류열풍이 매서운 일본인지라 <올드보이>에 대한 이런 냉랭한 반응은 다소 의외로 비춰질수도 있다. <올드보이>는 국내에서도 비평과 흥행 두마리 토끼를 잡은 흔치 않은 영화이고 칸느영화제도 인정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작이 일본 만화였다는 점까지 덧붙여져서 <올드보이>가 기존에 소개됐던 한국영화들과는 다른 반응을 얻을것이라는게 개봉전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하지만 개봉주차에 10위, 2주차인 지금 10위 밖으로 밀려난 상황을 보면 <올드보이>가 뒷심을 발휘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이유는 대략 두가지이다. 미시적인 첫번째 이유는 오랜만에 일본 극장가가 자국영화에 의해 거의 점령되었기 때문이다. 내부 시장환경이 녹록치 않았다는 얘기다. 에이가닷컴에 따르면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일본영화의 강세는 이어져 <지금, 만나러 갑니다>(いま, 會いにゆきます)가 2주연속 1위를 지켰고, 신작 <괭이갈매기>(海猫)가 3위에, <숨겨진 검, 오니노츠메>(隱し劍 鬼の爪)와 <웃음의 대학>(笑の大學)도 각각 4위, 5위를 기록해 여전히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탑5안에 든 작품은 <콜래트럴>이 2위로 유일하다. 6위 역시 일본영화인 <피와 뼈>(血と骨)이고 나머지 하위권을 기타 외국영화들이 차지한 정도다. 상위권에 랭크된 일본영화들도 2~3주 연속된 흥행력을 보이고 있어 반짝 흥행이 아니라 장기상영이 가능해 보인다. 게다가 다음주에는 미야자키 하야호의 신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까지 개봉해 당분간 일본 박스오피스는 자국영화들로 목록이 채워질 전망이다.
거시적인 두번째 이유는 직접적인 <올드보이>의 부진 요인은 아니지만, 한류자체의 속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한류열풍이 유별난 일본에서 무조건 한국영화가 잘될 것이라는 모종의 편견이 바로 그런 오해다. 하지만 일본내 한류열풍은 작품보다는 배우에,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집중된 경향이 짙다. 그리고 배우에 대한 팬들의 선호정도도 국내와 일본은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장동건, 이병헌 등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인기가 높지만 배용준과 박용하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양국이 사뭇 다른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시아에 휘몰아치는 한류열풍을 보며 당연히 국내 히트작도 다른 국가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색안경을 낀 시선이 분명히 존재했다.
<실미도>가 그랬고 <태극기 휘날리며>도 마찬가지였으며 <올드보이>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스캔들>을 제외하고 일본내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었던 작품들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내 머리속의 지우개>가 세운 일본수출 기록을 3주만에 <달콤한 인생>이 경신했다는 것은 분명 기쁜 소식이지만 추후 개봉시 작품판매가에 대한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일본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도 언제 싸늘해질지 모를 일이다. 또 천정부지로 치솟는 작품판매가는 자칫 작품의 질보다는 수출에 용이한 스타섭외로 이어지는 부실화를 불러올수도 있다.
여기에 보다 정교한 배급 및 개봉전략도 필요하다. 특히 일본같은 큰 영화시장은 할리우드영화 및 일본영화와의 관계속에서 세밀한 주의가 요구된다. 지역적 특성도 다르기 때문에 국내와 동일한 마케팅 방법을 고수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어찌보면 지금의 한류열풍은 예측하지 못한 수요에 대해 공급자가 마냥 신이나서 물건을 대는 것일수도 있다. 무조건 잘될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버리고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다각도의 전략이 필요할 때다. 일본내 <올드보이>의 반응은 그런 생각을 더욱 뒷받침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