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여선생 vs 여제자> 배우 이지훈
2004-11-18
글 : 박은영
사진 : 오계옥
“노래를 하나, 대사를 치나 모두 연기 아닌가요?”

이지훈이 무대에 오른다. 마이크를 들지만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다. “노래하지 않는 자리에서 그런 환호와 따뜻한 시선을 받은 건 처음이에요. 기분 좋지요. 영화가 잘 나왔구나, 안심도 되고요.” <여선생 vs 여제자>의 홍보 일정과 <몽정기2>의 막바지 촬영으로 바쁜 이지훈은 피로한 기색을 누르고, 옅은 흥분을 내비친다. 8년 전 ‘고교생 가수’로 나타난 이지훈이 이제 한쪽 발을 영화로 내딛고 있다. 오빠 부대가 에워쌌던 무대는, 연모하는 여제자들이 주시하는 강단이 되었고, 노래는 대사로 바뀌었다. 여학교의 인기 교사 역할을 연달아 맡은 이지훈은, 그렇게 눈에 익은 풍경을 연출하며, 은근슬쩍 연기자로 변신하는 중이다.

하마터면 이지훈의 영화 데뷔작은 <여선생 vs 여제자>가 아닌, 다른 작품이 될 뻔했다. 촬영 시작 한달 뒤에 ‘교체 투입’됐지만, 이지훈은 그 과정에 별 거부감이 없었다. 망설인 건 딱 하루, 거의 동시에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던 드라마 때문이었다. “여자들한테 포커스가 맞춰진 영화라서, 저는 부담이 덜 됐어요. 시작하는 영화로 좋겠다 싶었죠.” 장규성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던 당시, 일일드라마 <귀여운 여인>에 출연 중이던 자신을 모델로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감독님이 나중에 그러시더라고요. 모든 배역에는 주인이 있는 것 같다고.” 노처녀 여선생과 조숙한 여제자의 애정공세에 시달리는 총각 선생 역할엔 별다른 액션이나 리액션이 없다. 가끔 그들의 상상 속에서 달콤하거나 느끼해질 뿐이다. “연기하려고 했으면 어색했을 거예요. 그냥 감독님 지시대로 자연스럽게 가려고 했어요. 상상 속에서 보여주는 다른 모습들은, 연기할 땐 안 웃긴 것 같았는데, 스크린으로 보니까 다르더라고요. 아, 영화가 이런 거구나, 감독이 하는 일이 이런 거구나, 이 맛에 영화하는구나 싶었지요.”

실제로 이지훈은 음성도 낮고 말수도 적고, 틈나는 대로 성경을 읽는 사색가 스타일이지만, 그동안 오락 프로에서 적당히 까불고 느끼한 이미지로 어필해왔다. 그래서일까. 그가 맡은 역할들은 ‘꽃미남’이지만, 반듯하거나 완벽하지는 않다. 역할 이름부터 권상춘(<여선생 vs 여제자>)이나 강봉구(<몽정기2>)처럼 어설프고 촌스러운 느낌을 풍긴다. “이름으로 절반 깎고 들어가는 거죠.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전 더 좋아요.” 이즈음 가수들의 배우 겸업 유행 속에서, 이지훈의 행보는 특히 도드라진다. “제가 대중가수이지 마니아 가수는 아니잖아요. 한계가 있는 걸 알고 있어요. 연기는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죠. 요즘 배우 기근이라고, 가수쪽으로도 캐스팅 제의가 많이 들어오거든요.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다, 가수다, 국한할 필요없이, 재능이 있고, 기회가 있다면, 할 수 있다고 봐요. 노래를 부르든, 대사를 치든, 다 연기하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시사회가 이어지면서, 그는 벌써 시나리오를 여러 권 받았다. 가수 이미지를 느긋하게 벗고, 때가 되면 ‘남자영화’나 ‘시대의 인물을 그린 영화’를 해보겠다는 그의 두툼한 입술 가득 미소가 걸렸다. “행복해요. 뭐든 해야 할 때잖아요. 쉬지 않고 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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