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 릴레이] <하나와 앨리스>, 정성일 영화평론가
2004-11-23
글 : 정성일 (영화평론가)
두 소녀의 ‘거짓말 왕국’ 힘든 세상 버텨내는 법

나는 처음에 〈하나와 앨리스〉의 줄거리를 읽은 다음에 도대체 이 자가 어쩌려고 이런 이야기를 갖고 영화 한 편을 만들려고 작정했는지 의아한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도대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여고생 하나와 앨리스(본래 이름은 아리스가와)는 오랜 친구다. 선배 남학생 미야모토 마사시를 좋아하던 하나는 마사시가 셔터 문에 머리를 부딪쳐 정신을 잃자, 깨어난 그에게 거짓말을 한다. “선배, 저에게 사랑을 고백한 거 기억 안 나세요? 선배는 원래 ‘앨리스’가와를 사랑하다가 저를 사랑하게 되었잖아요?” 그 말을 믿은 마사시는 앨리스를 찾아갔다가 의문에 잠긴다. “왜 나는 저렇게 사랑스러운 ‘앨리스’가와와 헤어진 것일까?” 이와이 순지의 〈하나와 앨리스〉는 거짓말의 진심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이 거짓말로 이루어진 세계, 하지만 그 속에서 그걸 지키기 위해 하나와 앨리스는 안간힘을 쓰지만 거짓말은 진실을 찾아간다.

이와이 순지의 영화는 패턴의 반복이다. 처음에는 오해로 시작해서 굽이굽이 온갖 잡다한 사연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진실의 비밀에 이른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진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그런데 이른바 ‘이와이 월드’가 갖는 기기묘묘함은 현실의 찡그림을 다루면서 실재의 진실에 이르는 대신 결국 진실의 환상에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현실에 있는 얼룩을 지우기 위해 애쓰는 대신 그 얼룩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매달리게 된다. 하나의 두려움은 사실상 역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것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일종의 도미노를 가져온다. 그 상실을 막기 위해 앨리스는 마사시 앞에서 우정의 이름으로 하나의 거짓말 무대에서 연기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마사시를 관객으로 한 연극이다. 하지만 곧 이 연극은 거짓말을 내세운 진실의 연극이 된다. 이제 누가 관객이고 누가 연기를 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이와이 순지는 술래를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숨바꼭질의 순정 만화를 펼친다. 그러나 그 만화가 우스꽝스럽지 않은 것은 시노다 노보루가 시종일관 손으로 들고 찍은 에이치디 카메라가 소녀들의 심장 박동 가까이까지 다가간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의 흔들림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 사랑의 술래잡기에 홀린다면 당신은 이 영화를 그저 쳐다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이 연극은 하나와 앨리스가 자신들의 우정을 위하여 지어낸 이야기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는 그들 앞에 ‘눈떠야’ 하는 현실은 남편과 이혼하고 철없는 연애에 몰두하는 어머니와 살아야 하는 앨리스의 이혼가정과, ‘꽃 귀신 집’ 아이였던 자폐증 환자 하나의 세상 만나기의 곤란함이다. 소녀들은 그 참혹한 세상과 마주하기를 피하기 위하여 거짓말의 왕국을 만들어낸다. 하여튼 세상을 건너가야 한다면 부딪쳐서 부서지는 대신 거짓말의 사다리를 타고서 어른이 되는 쪽을 택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겨울에서 시작해서 가을에 끝나는 이 이야기 속의 소녀들은 부쩍 성장했고, 하나와 앨리스는 그렇게 세상을 건너갈 것이다. 혹은 그것이 이와이 월드가 환상으로 세상을 버텨내는 방법이다. 낯간지럽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이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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