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남과 북의 청춘들이 겪는 딜레마,
2004-11-23
글 : 김수경
29살에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를 만들었던 이규형 감독의 복귀작. “갈 수 있지만 갈 수 없는” 비무장지대라는 군사공간에서 펼쳐지는 남과 북의 청춘들이 겪는 딜레마.

비무장지대는 사실은 완전 중무장지대다. 남북한의 총구가 바늘 한뼘의 공간에 모두 집중된 곳. 한쪽에서 총탄을 날리기 직전까지만 그곳은 한시적으로 ‘비무장’이다. <DMZ, 비무장지대>는 남북한의 대치 상황처럼 두 갈래의 스토리로 나뉜다. 전반부는 수색대라는 한계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되는 신참 지훈과 고참 민기의 ‘아버지·아들’ 관계와 그들이 자신의 해방구인 ‘호텔 코코넛’을 꾸려가는 병영담이다. 후반부는 영화의 주제가 본격화되고 남과 북의 군인들이 자아내는 대립과 만남 그리고 그 결과인 비극을 그리고 있다.

영화학도 지훈(김정훈)은 부대 안에서 과감히 야한 영화를 상영하다가 보안대 일당에게 봉변을 당한다. 이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수색대 고참인 이민기(박건영) 병장. 그를 ‘아버지’ 삼아 보직을 수색대로 바꾼 지훈은 초소이며 자신들만의 아지트 ‘호텔 코코넛’에서 고참 권해룡(정은표)과 함께 세 사람만의 새로운 군생활을 시작한다. 긴장된 근무 상황을 제외하면 휴양지의 삶 같던 지훈의 군생활은 1979년 10·26 사태를 기점으로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한다. 생포된 북한군 리상호 상위(정채경)를 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상황에서 지훈의 갈등은 폭발한다.

<DMZ, 비무장지대>는 복고적이다. 병영을 무대로 벌어지는 젊은 남자들의 해프닝과 일상사에 대한 관찰은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동작 그만>의 추억을 고스란히 소환한다. 극중에 묘사되는 인간 군상과 그들의 아기자기한 인간관계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로 대표되는 80년대 후반에 쏟아진 대학가를 무대로 한 청춘물의 정서를 그대로 답습한다.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시대물 성격이 후반부에 강하게 불거짐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청춘물의 잔영이 짙게 깔린다.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로 급부상한 신성 박건영은 폭발력 있는 모습으로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아로새긴다. 리상호나 권해룡도 개별적으로는 매력적이고 개성이 강한 캐릭터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사건을 통해 서로가 충돌할 때면 갈등구조가 제대로 증폭되지 못하는 한계도 명확하다.

병영담을 중심으로 한 지훈의 성장 드라마라는 측면과 급박한 정치적 상황 속의 개인의 실존적 선택이라는 갈림길에서 이야기는 한쪽으로 과감하게 기수를 돌리지 못한다. 이규형 감독의 실제 경험담을 반영한 점이나 길었던 제작기간의 어려움을 감안해도 두 부분으로 확연히 분절되는 드라마와 정서적 흐름이 지나치게 급박하고 불균질적인 면은 영화 전체의 균형을 취약하게 만든다. 작품 제목을 ‘호텔 코코넛’과 ‘DMZ, 비무장지대’ 사이에서 오랫동안 고민한 것도 이러한 맥락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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