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숨겨진 역도산의 진실을 말한다
2004-11-25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영웅 역도산』 이순일 지음/ 미다스북스 펴냄

대부분의 일본인은, 역도산을 나가사키 출생의 일본인으로 알고 있다. 전후의 굴욕과 허탈감을, 가라테촙 한방으로 날려버린 위대한 영웅.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거대한 체격의 미국 프로레슬러를 무력으로 무너뜨린 역도산. 가장 야만적인 방법이지만, 일본인에게 힘을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당시 역도산은 천황 다음으로 유명한 일본인이었고, 무소불위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역도산은 조선인이다. 아들조차 그 사실을 알지 못할 정도로, 역도산은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숨겼다. 그리고 승리만을 생각했다. 가장 야비한 방법으로, 가장 잔인한 수단으로 오로지 성공의 길만을 달려갔다. 스모에서 요코즈나가 될 수 없다면, 미국인의 스포츠 프로레슬링으로 세계 챔피언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1963년, 역도산은 허무하게 죽는다. 다음해인 1964년에 도쿄올림픽이 열렸고, 일본은 과거의 상처를 털어내고 다시 ‘문명’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 위대했지만 ‘야만’적이었던 역도산의 죽음은, 새로운 일본의 입장에서 반드시 털고 넘어가야 할 원죄 같은 것이었다. 극적인 시기에 요절한 역도산은 전설의 영웅이 되었고, 지금도 일본인은 역도산을 존경한다. 역도산에 관련된 책이 200여권 나왔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은 거의가 일본인 역도산이다. 그러나 김일이 무단으로 현해탄을 건너가 제자를 간청했던 것처럼, 일찌감치 역도산은 한국인의 영웅이기도 했다.

일본인이 알고 있는 역도산, 한국인이 알고 있는 역도산은 전혀 다르다. 재일동포 3세인 르포라이터 이순일이 역도산의 생애를 추적한 이유는, 일본에서 정설로 알려져 있는 역도산의 이면,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철저한 기자정신으로 모든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진술에서 나오는 인물과 의문을 다시 캐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또 하나의 역도산’을 찾아낸다. 그건 일본인이 아는 역도산과도, 영화 속의 역도산과도 다른 얼굴이었다. 혹은 뒷모습이고. <영웅 역도산>은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역도산의 어둠을 파고들어간다. 그가 왜 해방이 된 뒤에도 일본에 남았는지, 왜 스모를 그만두고 프로레슬러가 되었는지, 왜 그가 니가타항의 북송선을 찾았는지를 철저한 증언에 의거하여 말해준다.

<영웅 역도산>은 조선인 역도산이 왜 일본인이 되어야 했고, 왜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지를 치밀한 고증으로 증명하고 있다. 르포의 힘이 무엇인지, 역도산이란 인물이 누구인지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12월에 개봉할 영화 <역도산>이 말하지 않는, 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도산을 <영웅 역도산>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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