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좀 본다고 닳나요?” 씩씩하게 말하며 종이컵 토슈즈를 신은 앨리스가 발레를 시작한다. <하나와 앨리스>를 본 사람이라면 그뒤 5분 남짓한 시간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다. 제목엔 두 주인공의 이름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하나와 앨리스>를 ‘앨리스의 영화’로 남게 할 이 발레장면은 아오이 유우가 연기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감동적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또 아오이가 아니었다면 우비를 입은 채 빗속에서 설치는 장면은 별로 귀엽지 않았을 수도 있고, 미야모토에게 “워 아이니”라고 말할 때 그리 찡한 감정을 느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나이로 스무살짜리 소녀다운 푸릇함, 순간마다 변화하는 표정, 여릿하면서도 쾌활한 성격은 영화 속 앨리스의 것만이 아니었다. <하나와 앨리스> 개봉에 맞춰 서울을 찾은 아오이 유우는 영화에서보단 좀더 작고 말라 보였지만, 역시 앙증맞고 귀여운 소녀였다. 이 발산하는 청춘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차례의 인터뷰와 무대인사를 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새벽에 동대문 시장을 찾았고 “부루고기, 게장, 가무자탕, 떠꾸보끼” 같은 자극적인 한국 음식에 열광하는 등 호기심 많은 아이이기도 했다. 하긴, “연예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TV나 잡지도 거의 본 적이 없고, 영화라고 해봐야 여름방학 때 <도라에몽>을 본 정도”인 아오이였으니 홍보 활동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아오이가 앨리스의 캐릭터를 잘 소화한 데는 영화에서처럼 영화, 드라마, CF 등 수많은 오디션에 떨어져본 경험을 가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특히 영화에서처럼 먹는 모습을 찍으면 평소에 잘 먹던 것도 이상하게 안 먹히고 이상한 모습으로 먹게 되더라고요.” 이와이 순지 감독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원조교제를 하는 여중생으로 출연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누리게 됐을지 모른다. 사실, 그는 이 영화를 끝내고 연예계 활동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감독이 “너 왜 연기를 하려고 하니?”라고 물을 때 그는 “그냥 추억 만들려고 하는 건데요”라고 답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와이 순지 감독과의 작업은 당시 17살였던 아오이에게 커다란 자극을 줬고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하나와 앨리스>를 통해 재회한 이와이 감독은 아오이에게 전편보다 높은 수준의 연기를 요구했다. 감독의 주문은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같은 학교 2년 후배인 하나 역의 스즈키 안과 실제 친구처럼 지내면서 끊임없이 리허설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시나리오도 계속 바뀌었다. 발레장면은 가장 힘든 촬영이었다. 이틀에 걸쳐 촬영이 이뤄졌는데, 감독은 아오이에게 테이크 수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몇 시간 동안 그저 발레만 하게 했다. 컷 분할을 미리 생각지 않고 계속 여러 앵글로 찍은 뒤 편집하는 이와이 감독의 스타일 때문에 아오이의 발은 부르트고 물집이 생겼다. 감독에 대한 원망이 없을까 싶은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이 감독님의 영화라는 점이 의미있었어요. 감독님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집을 할 수 있도록 마음에 들 만한 재료를 제공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한다. 11월18일 크랭크인하는 <니라이카나이에서 온 편지>를 비롯해, 일본에서 영화 2편과 TV드라마 1편, 인터넷영화 1편을 당장 찍어야 할 정도로 스타로 떠오른 아오이는 “이젠 오디션을 안 봐도 된다”는 점이 좋다며 11월의 하늘처럼 맑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