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 릴레이] <이프 온리>, 김소영 영화평론가
2004-11-30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인간이 자신의 종을 재설계할 수 있다는 게놈 프로젝트의 시대, 대중문화인 영화는 생체공학이 재생산하기 어려운 영역, 즉 기억이나 영감을 탐사하면서 국가와 기업이 주도하는 생물학적 권능으로부터 비켜갈 수 있는 인간 고유의 능력, 예컨대 사랑에 더욱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또한 리모컨이나 컴퓨터 문화가 확산시킨 되감기와 재생 기능 그리고 메모리 기능 등은 ‘인간은 자신이 발을 담근 물에 다시 그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시간의 불가역성에 대한 감각을 급격히 바꾸고 있다. 현재 개봉 중인 영화만 보아도 〈이프 온리〉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나비효과〉 등이 바로 이러한 문제에 집착하고 있으며, 이번주 개봉작인 〈포가튼〉 역시 그러하다. 〈메멘토〉와 〈식스 센스〉 등도 기억의 재구성과 인간의 신원 문제를 영화의 선형적 구조를 해체시키며 다룬 영화들이었다.

〈이프 온리〉라는 영화의 배경은 런던이다. 일 중독에 빠진 노동 계급 출신의 경영인 이안(폴 니콜스)과 미국 오하이오에서 런던으로 유학온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여자 사만다(제니퍼 러브 휴잇) 사이의 그렇고 그런 사랑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예컨대 영화 초반부 둘 사이에 불거진 차이라고 해봐야 미국식 영어를 하는 사만다는 영국에서 즐겨 쓰이는 욕(블러디와 버거)을 배우면서 영국의 “문화”를 익히고, 돈 버는 일에 빠져 있는 이안은 곧 결혼할 사만다가 오하이오 출신인지 인디애나 출신인지 통 모르고 있다는 사실 정도다.

그런데 이 시시한 이야기 중 흥미로운 점은 남자 주인공 이안이 고액으로 팔려고 하는 것이 게놈 프로젝트라는 것이고, 그 와중에 그가 데자뷔(기시감)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안은 사업 설명회에서 이 프로젝트를 사는 것이 ‘시간’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본인에겐 앞으로 펼쳐질 하루의 시간이 기억이라는 콘텐츠로 이미 저장되어 있다. 영화에서의 가정은 과거가 기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기억되고, 그것을 코드 변경함으로써 미래가 수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안의 진짜 과거는 직장을 잃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노동자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는데, 그것을 부정, 망각함으로써 그는 런던의 성공한 프로페셔널이 된다. 이렇게 과거를 망각하고 미래를 기억하는 와중에, 이안의 미래 변경의 의지는 사랑의 재발견에서 나온다. 일중독이라는 명목으로 기업에 종속되어 있던 이안은, 사만다의 죽음을 예지하면서 자신의 삶의 스케줄을 재조정하고 시간을 개인화시킨다. 그러나 이안의 그러한 시간의 개인화, 시간의 소유는 아침에서 밤 11시까지로 미처 채 하루가 허락되지 않는다.

인간의 정체성과 기억 그리고 시간을 둘러싼 기업과 개인 간의 이러한 힘겨루기는 〈포가튼〉에 와서는 외계와 국가 그리고 개인 간의 대결로 바뀐다. 이 영화가 일으키는 막연한 공포의 근원은 물론 불가지의 외계적 권능이지만, 구체적인 공포는 무능하면서도 대담무쌍한 미국 정부의 권력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공포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모성이다. 돈으로 몇 기가 바이트의 메모리를 살 수 있는 시대, 기억 장치에 희생적인 사랑과 모성이라는 정동(情動)을 힘겹게 부여하고 나서야 그것은 비로소 ‘인간’의 메모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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