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부러지는 영국 악센트를 지닌 아가씨 레이첼 와이즈와 1년 만의 만남. 이집트사막의 거대한 모래바람 속에서 피어난 사랑으로 사내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가 한결 원숙한 아름다움으로 돌아왔다. 악령의 부활을 막기 위해 그리고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다시 한번 어지러운 모험 속으로 뛰어들 참이다. <미이라>에 이어 <미이라2>에도 출연하고 있는 레이첼 와이즈는, 배우의 존재감이 컴퓨터그래픽의 효과보다 약하게 마련인 어드벤처 블록버스터에서, 백치미와 지성미가 배합된 묘한 이미지로 관객을 현혹하는 데 성공한 ‘특이 사례’가 됐다.
<미이라> 시리즈로 이름을 알렸지만, 레이첼 와이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유럽 작가 감독들의 작품에 번갈아 출연하며, 자신의 영토를 넓힌 당찬 배우다. <미이라> 이전에 키아누 리브스와 <체인 리액션>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작가주의 감독 편력은 데뷔 시절부터 시작됐다. 베르톨루치의 <스틸링 뷰티>에서 섹시하고 방탕한 여인 미란다로 출연한 것이 첫 영화 경험. 마이클 윈터보텀의 <광끼>에선 사악함마저 사랑하게 하는 치명적인 매력을 분사했다. <미이라>로 스타덤에 오른 뒤에도 할리우드로 이주하길 거부하며, 헝가리를 배경으로 한 이스트반 자보의 서사극 <선샤인>, 장 자크 아노의 스탈린그라드 전투기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 출연해왔다. 이름으로 장난치자면, 레이첼 와이즈라는 이름에서 그간 체현한 캐릭터들의 특징을 읽어낼 수 있다. 흔히 ‘와이즈’로 발음하는 그녀의 성은 ‘바이스’로 발음해야 맞다고 하는데, 발음이 같은 두 단어 ‘wise’와 ‘vice’는 영화 속 그녀의 분신들을 묘사하고 있다. 레이첼 와이즈를 관객의 연인으로 만든 것은, <미이라>의 지적이면서 순수하고 귀여운 이미지이지만 배우로서의 저력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건, <스틸링 뷰티>나 <광끼>처럼 농염한 팜므파탈을 연기했을 때다. 레이첼 와이즈는 이처럼 천사와 악마의 얼굴이 공존하는 묘한 배우, 극과 극을 치닫는 변신을 즐기는 배우다.
탐스러운 흑발에 동그란 얼굴이 주는 이국적인 느낌은, 유대계 헝가리인 부계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모계의 조화 덕이다. 13살부터 모델로 활동한 레이첼 와이즈는 케임브리지대 재학 시절 조직한 ‘토킹 텅스’라는 연극단체에서 출품한 연극이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수상하기 전까지는 전업 배우를 꿈꾸지 않았다. 조기 모델 교육과 캐스팅 등에 치맛바람을 행사했다고 알려진 어머니보다는 “그 실력으로 배우 하느니 차라리 다른 일을 찾으라”고 꾸짖은 아버지의 영향력이 더 컸던 듯. “타고난 배우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연기에 대한 내 사랑은 집착에 가까웠다. 연기는 내게 마약과 같았다.” 레이첼 와이즈는 <미이라>의 성공도 “취향에 맞는 가난한 영화에 출연할 여유를 준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리하여 <미이라>의 모래바람이 잦아들자마자 <너스 베티>의 닐 라뷰트 감독이 연출하는 연극 <셰이프 오브 싱?gt;의 오디션장에 달려갔고, 최근까지 무대에 섰다. 의아해하는 세상을 향해 그녀는 “진정으로 무대에 서고 싶었고 때를 맞춰 회전목마에서 내린 것뿐”이라고 응수한다. <아메리칸 뷰티>의 샘 멘더스 감독이나 배우 닐 모리세이와의 염문으로도 유명한 그녀가 제2의 엘리자베스 헐리로 머물지 않은 이유는,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미이라2> 에블린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액션어드벤처영화에 도서관 사서라니,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했지만 눈요깃감으로 채워넣은 여성 캐릭터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사람들은 오락을 원한다. 어떻게 내게 감히 롤러코스터에 올라타 익살을 떨라고 하느냐, 며 잘난 척할 필요는 없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르포를 통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많은 여성이 참전했다는 걸 알게 됐다. 무엇보다 내게 큰 영감을 준 것은, 라이플 총을 베고 진흙 속에서 잠을 자는 어떤 여군의 사진, 그 이미지였다. 전쟁영화가 유행이라지만 분명한 건 할리우드에서는 러시아 영웅이 나오는 이런 영화는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