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찬란하고 영원한 찰나의 미학, <하나와 앨리스>
2004-12-08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이와이 순지의 아름다운 환상 <하나와 앨리스>

이와이 순지는, 찰나의 희열을 아는 감독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스쳐왔지만,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던 일상이나 성장 같은 것들. 아스라이 기억이 날까 말까 하는 그 찰나를, 이와이 순지는 찬란하게 되살려준다. 마법을 불어넣어, 찬란한 황금시대의 백일몽을 펼쳐 보인다. 중편영화인 <4월 이야기>의 스토리는 너무나도 단순하다. 무사시노대학에 들어간 소녀가,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선배를 만나는 이야기. 연애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대학에 들어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까지가, <4월 이야기>의 모든 내용이다. 그 사소하고 짧은 순간이 흥미진진한 영화로 변신할 수 있으리라고는, <4월 이야기>를 보기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4월 이야기>는 사랑의 기적에 관한 영화다. 우즈키는 평범한 소녀였다. 공부도 중간이고, 좋아하는 사람을 마음에만 담아두고 내색을 못할 정도로 용기도 없다. 그런 우즈키가, 선배가 간 대학에 가기 위해 ‘기적’을 일으킨다. 누구나 기적은, 우즈키가 도쿄의 무사시노대학에 입학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기적의 순간은, 우즈키가 사랑을 품고 있는 그 찰나에 있다. 이와이 순지는 우즈키가 대학에 입학하여 겪게 되는 일상에 천착한다. 아주 작고 평범한 일상의 에피소드들. 낚시 동아리에 들어가고, 이웃집 여자에게 식사를 권하고, 소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순간 같은 것들. 그 에피소드들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우즈키는 다른 일상을 거쳤을 것이고, 전혀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순간들에 사랑이라는 촉매가 더해지면, 찬란한 빛을 발한다. 사랑이 개입된 순간 그 모든 찰나는 영원으로 달음질치고, 그를 둘러싼 빛과 공기의 무게와 질감까지 바꿔버린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 느낌, 설렘의 아우라를 이와이 순지는 아찔할 정도로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사랑 자체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 찰나

사랑 그 자체보다는,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 느낌, 찰나가 더욱 소중한 것이다. 사랑하고 있다, 나 사귀고 있다, 란 상황처럼 애매한 것도 없다. 그 애매함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개념이나 단언이 아니라, 아우라나 찰나 같은 모호한 존재들이다. 이와이 순지의 신작 <하나와 앨리스>는 그런 모호함의 만화경을 보여주는 영화다. 짝사랑하는 선배에게 기억상실증이라는 거짓말을 하고 연인이 된 하나. 하나의 거짓말 때문에 난데없이 선배의 옛 연인이 되어버린 앨리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두 여인과의 사랑을 기억하려 애쓰는 미야모토. 서로 주고받는 사랑이,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의 사랑을 찾아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미로 같은 짝사랑의 여정을 헤매다닌다.

이와이 순지가 잡아내는 것은,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충만한 시간이 아니다. ‘소녀 페티시’라고 부를 수도 있을 만큼, 소녀들의 일상 속으로 바짝 들이댄 카메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디지털카메라는 흔들리면서, 늘 흔들리는 10대의 마음을 담아낸다. 그건 거창한 순간이 아니다. 앨리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자 거의 반사동작처럼 V자를 그리는 앨리스를 보는 것은 너무나 아름답다. 플랫폼에 서서 농담을 지껄이며 발레 동작을 맞춰서 하는 하나와 앨리스의 모습은, 한없이 사랑스럽다. 그런 순간을 보고 있으면, 영원히 행복이 지속될 것만 같다. <하나와 앨리스>는 소녀들의 황당한 사랑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소녀들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한 경배다. 분명히 현실적이지만, 거기에는 필터가 끼워져 있다. 소녀들의 일상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와이 순지인 것이다.

소녀예찬 “이와이 순지는 소녀다!”

한국에서 이와이 순지의 이름을 널리 알린 <러브 레터>가 일본에서 개봉할 당시, 팸플릿에는 ‘여성적인 피부와 남성적인 눈’이란 말이 쓰여 있었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여성적인 피부감각에 뿌리내린 소녀를 그리면서, 따뜻한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정도가 될 것이다. 한 일본 잡지에서 ‘이와이 순지는 소녀다’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낼 정도로 ‘소녀’에 정통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와이 순지는 어디까지나 남자다. 이와이 순지는 남자의 시선으로, 소녀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그것이야말로 남자들이 볼 때 최고로 미지의 세계가 아닐까. 그 부분만큼은 본 적이 없는, 그런 식의 인간관계. 물론, 남자 단짝친구로 하는 편이 스스로의 경험도 있고 소재가 잔뜩 있지만, 그런 것은 어쩐지 찍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곳에는 환상이라는 것이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무거나 시켜도 좋을 것 같은 무책임한 부분이 조금은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 감독들이 일본을 무대로 하고 싶다고 말할 때 갖게 되는 그런 식의 환상과 비슷하달까.” 그 아름다움은,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들도 동의할 것이다. 모든 여성들의 과거 한때,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그토록 환상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무엇인가.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환상은 필요한 것이다.

그런 환상이, 한때 일각에서 이와이 순지를 비판했던 이유다. ‘이와이 월드’는 현실과 동떨어진 CF라든가, 사랑과 추억을 미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일본에서 있었다. 이와이 순지는 그런 비판을 결연하게 뚫고 지나왔다. 아직 개봉대기 상태인 <스왈로우 테일>이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이와이 순지의 어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가 바라보는 환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스왈로우 테일>이 여전히 환상적인 묵시록이었다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이지메를 당하는 소년의 현실을 통해 10대의 고난을 그려낸다. 그 어둠의 순간을 그릴 때에도, 이와이 순지는 망설이지 않는다. 예리하게, 그 굴욕의 순간을 관객의 가슴 깊숙이 밀어넣는 현란함이 있다. ‘푸른 불꽃’처럼,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차가운 아름다움이 있다. 이와이 순지의 영화는 지극히 감각적이지만, 결코 공허하지 않다. 아무리 사건과 이유가 황당해도, 그 순간의 흐느낌에 동참하게 만든다.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감정이 현실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와 앨리스>의 사건은 사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리도 간단하게 기억상실증을 믿어버리는 소년이, 과연 존재할까? 하지만 그런 만화적인 상황에서도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끌어내는 것이 이와이 순지의 힘이다. <하나와 앨리스>는 한 초콜릿 제품의 홍보를 위한, 인터넷 단편영화 시리즈로 기획되었다. 3편으로 만들어진 <하나와 앨리스>의 주인공은, 하나였다. 극장판으로 바뀌면서 주로 추가된 것은 앨리스의 가정사와 오디션 현장 등이다. 인터넷 단편이 이와이 순지의 말처럼 ‘코미디’에 초점을 맞춘 소녀들의 우정 이야기라면, 극장판 <하나와 앨리스>는 그들의 이면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본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이 누구인지를 유려한 스타일로 묘사한다. 일종의 페티시이긴 하지만, 그런 집착과 환상이 이와이 순지의 영화세계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극장판으로 바뀐 <하나와 앨리스>는, 10대 소녀의 세계에서 맴돌고 있다. 그곳은 의외로, 사회에서 유리된 낙원이 아니다. 이지메나 원조교제가 없어도, 그 세계는 잔혹하다. 아니 비루하다. 성인들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 “학교를 나오면, 사회라고 하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어릴 때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없다. 학교와 똑같은 커뮤니티가 사회에는 존재하고, 모두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어서, 그렇게 속해 있는 장소 중 하나가 학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앨리스의 오디션이나, 앨리스보다도 더 소녀 같은 어머니가 등장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그들 역시 성인 이상의 가혹한 일상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10대의 한순간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다

그러나 10대는, 성인들과 다른 속도로 살고 있다. <하나와 앨리스>는 소녀들의 현란한 순간을 아름답게 잡아내면서도, 맹렬한 속도로 달려간다. 그들은 사랑하면서 질투하고, 우정을 나누면서 배신하고, 실연의 상처에 시달리면서도 만담을 외운다. 미야모토를 포기하라고 속내를 비치다가도 순식간에 ‘농담’이라고 얼버무린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미야모토와의 과거를 만들면서 되살린다. 그들은 10대이지만, 성인과 전혀 다르지 않다. 다만 그 모든 것을 2배, 3배의 속도로 살아갈 뿐이다. 오래 생각하지 않고, 오래 후회하지 않고, 오래 망설이지 않는다. 그 활력이, 그 에너지가 그들에게 주어진 순간을 빛나게 만든다. 그건 단지 하나와 앨리스만이 아니라, 10대 고유의 것이기도 하다. “두 사람 모두 나이브하면서 모순적인, 진짜 십대라는 느낌이 들면서, 연기도 역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아이들의 연기에는 한계가 없다. 내가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디렉팅을 하면, 그 아이들 속에서 리얼한 순간이 태어나, 생각지도 못했던 최고의 연기가 나올 때가 있다. 정말로, 동물을 방사해놓고 사진을 찍는 것 같은 느낌이다. 동물영화라고나 할까. (웃음) 그것은 그녀들 세대 특유의 것으로, 어른들의 세션과는 완전히 다르다. 방금 전까지 재잘재잘 수다를 떨던 아이들이 슛이 들어가면 완전히 바뀌기도 하고. 두배의 속도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와이 순지의 영화는, 그 순간을 잡아낸다. 빠르게 움직이는 10대의 한순간을, 느린 동작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 순간이 얼마나 찬란한 것인지, 그 찰나가 얼마나 영원한 아름다움인지를 그려내는 것이다. 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와이 순지가 그려내는 환상의 세계는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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